베트남 외화수입, 경제발전에 유용하게 사용…개인 자부심과 가족 부양 이뤄

[미디어펜=김규태기자] 50년 전 베트남에는 수십만 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를 통해 재조명된 그 시절, 수많은 덕수들은 생소한 기후와 지형 속에서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열어나갔다. 베트남 파병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삶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개인들의 몸부림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해외파병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은 당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1960년 북부 월맹의 무력 침공으로 베트남전쟁이 시작되었고 1964년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국은 그해 12월 28일 브라운 주한 미국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하며 한국군 증파를 요청했다.

   
▲ 자유경제원에서는 베트남 파병의 경제적·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자유경제원은 1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1층 이병형홀에서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본 행사에서 이대용 전 주베트남 대사관 공사가 축사하고 있다.

이에 1965년부터 한국은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해서 1973년 철군할 때까지 8년 5개월 동안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젊은이들은 32만여 명에 달한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과 파병에 대한 보상 조치로 '브라운 각서'를 맺었으며, 베트남전 파병 보상 조치인 '브라운 각서'와 더불어 '월남 특수'를 통해 한국은 경제적인 고용 증대와 성장을 이루었다. 50년 전 한국의 선배세대가 이루었던 일이다.

이에 자유경제원에서는 베트남 파병의 경제적·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자유경제원은 1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1층 이병형홀에서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자유경제원은 대한민국 개인들이 이룬 ‘기적 같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찾아 그 경제적 효과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연중·연속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는 지난 4월 파독근로자, 5월 구로공단 토론회의 후속이다. 향후 자유경제원은 영화 연평해전, 중동근로자, 서울 평화시장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계획되어 있다.

   
▲ 토론회는 영상시청으로 시작했다. 이어진 시간은 <20대 젊은이들이 본 베트남파병>이었다. 청년들이 본 파월은 어땠을까. 자유경제원 김연주 연구원과 조우현 연구원은 대담을 통해 지금 젊은세대의 시각을 보였다.


15일 열린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는 개최장소 특성 상 용산 전쟁기념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관람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토론회 본 행사에서 이대용 전 주베트남 대사관 공사가 축사를 했으며 영상 시청과 윤서인 작가의 만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윤서인 작가는 <우리가 진짜 잊지 말아야 할 것, 50년 전 베트남 파병을 기억합니다>라는 만화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 목숨을 걸고 베트남전에 복무했던 젊은이들(지금의 5060세대)을 기렸다.

이어진 순서는 20대 젊은이들이 본 베트남파병이었다. 청년들이 본 파월은 어땠을까. 자유경제원 김연주 연구원과 조우현 연구원은 대담을 통해 지금 젊은세대의 시각을 보였다.

김연주 연구원은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애국은 누군가 감추려 해서 감춰지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떠났던 참전용사들은 당시 한반도의 숙명이었던 ‘가난’을 극복하게 해주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연주 연구원은 “파병 8년 6개월 간 우리나라는 연평균 8% 이상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80여개 한국기업이 월남전 특수를 누리며 참전경제효과가 67억 달러 이상으로 기록되었다”며 베트남 파병의 의의를 되새겼다.

조우현 연구원은 “월남전 직전 베트남의 모습과 대한민국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다”면서 “북의 월맹이 월남을 무너뜨리고 통일한 후의 이야기가 더욱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조우현 연구원은 “승리한 월맹 지도자는 월남의 사회지도층 및 가족들을 모두 죽이거나 수용소에 보냈다”면서 “무엇보다 소름이 돋았던 점은 그 다음으로 숙청한 인사들이 월남 내 간첩-월맹 승리의 1등공신들이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인사들과 간첩들을 의미하는 지적이었다.

   
▲ 관람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토론회 본 행사에서 이대용 전 주베트남 대사관 공사가 축사를 했으며 영상 시청과 윤서인 작가의 만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윤서인 작가는 우리가 진짜 잊지 말아야 할 것, 50년 전 베트남 파병을 기억한다고 밝히며 베트남 참전 당시 세대를 기리는 만화를 그렸다. /사진=윤서인 작가

자유경제원의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는 오후 3시부터 관련 인사, 전문가들의 본격적인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사회로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발표했으며, 이어서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이 패널로 참석하여 열띈 토론을 벌였다.

발제를 맡은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원조 증가는 한국의 재정 부담을 크게 덜어줌으로써 경제개발에 기여하게 된다”고 밝히면서 “미국은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대한군사원조를 급격히 삭감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전년 대비 약 6천만 달러나 감소시켰다. 파병 결정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가 크게 늘어나 경제적 부담 경감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게 된다. 1962년~1965년까지 총 9억800만 달러의 원조를 받아 연평균 2억2,700만 달러였는데 반해, 파병기간인 1966년~1971년에는 총 20억2,200만 달러의 원조를 받아 연평균 3억700만 달러를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권혁철 소장은 “당시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이 1961년 1억4,600만 달러에 불과했고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66년에도 2억5,000만 달러였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 군사원조 금액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혁철 소장은 “베트남 파병은 경제기적의 도화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 “베트남 파병 전과 파병 후의 경제 지표를 보면 이러한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소장은 “1963년을 기준으로 할 때 파병 마지막인 1973년까지, 즉 1963년 이후 10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배, 국민총생산액은 11배, 그리고 총 수출액은 37배나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 자유경제원의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에서는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사회로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발표했다. 이어서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이 패널로 참석하여 열띈 토론을 벌였다.


2번째 토론자인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발제자가 베트남 파병의 배경과 원인을 경제적 요인과 안보적 요인으로 나누어서 설명한 후에 베트남 특수가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잘 정리했다”고 논평했다.

특히 김승욱 교수는 “베트남 파병 대가로 미국이 한국에 준 군사원조의 확대, 그리고 한국산 물품의 구매를 통해 한국 경제가 어떠한 이익을 얻었는지 잘 보여주었다”면서 “1963~1973년 기간 중 1인당 국민소득이 약 4배, 국민총생산액은 11배, 그리고 총 수출액은 37배가 증가했다는 결과를 토대로 본다면, 베트남 파병은 ‘경제기적의 도화선’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승욱 교수는 이어 베트남전 참전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미국과의 우호선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6.25전쟁 때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자유세계를 지키는데 동참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승욱 교수는 “베트남전 참전의 대가로 경제적 이익은 물론이거니와 군사적인 성과를 보완했으면 한다”고 지적하면서 “베트남 참전으로 한국군이 현대화되었으며, 실전경험을 쌓아서 남북대치관계에 있는 한국군의 전력이 획기적으로 상승하였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군사적 양 방면으로 일거양득이었다는 지적이다.

3번째 토론자인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베트남파병으로 벌어들인 외화수입은 무역과 무역외 부분을 모두 포함하여 약 10억 달러에 달했다”면서. “이는 한일협정을 통하여 청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낸 금액 8억 달러와 비교해볼 때 엄청난 액수였다”고 지적했다.

당시 경제개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외화자본이 극히 부족했던 한국에게 베트남에서의 달러 수입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경제발전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는 설명이다.

김영호 교수는 “해당 수입은 장병들의 전투 수당, 베트남 파견 한인 근로자 수입, 베트남 수출, 현지 건설 사업, 미국에 대한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밝히면서.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희생도 매우 컸다고 언급했다.

김영호 교수는 이어 “군 장병 5천여 명이 전사했으며 베트남 현지에서 활동하다가 베트콩에 피살된 근로자 숫자는 300여명에 이르렀다”면서 “이런 희생 위에 이루어진 ‘베트남 특수’를 계기로 하여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 자유경제원의 <베트남 파병: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토론회는 오후 3시부터 관련 인사, 전문가들의 본격적인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관람객들이 경청하고 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은 “베트남전은 한국 경제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1963~73년 기간 중 한일관계 정상화와 베트남전 참여로 획득한 외화 총액은 한국 외화수입 총액의 3분의 1에서 절반에 이르는 규모였다”고 밝히면서 “일본이 6.25를 통해 경제부흥을 했듯이 베트남전은 한국경제의 도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논평했다.

이어 김용삼 편집장은 “베트남 파병은 우리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오랜 열등의식, 피지배의식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자질에 새롭게 눈뜨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 미국의 원조와 군정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떨쳐버릴 수 없었던 피지배의식, 열등의식, 속국의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주성을 되찾았다는 설명이다.

김용삼 편집장은 “베트남 파병은 자주성 확립이라는 견지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