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 강남·강북 싹쓸이하며 '최전성기'
선별수주 기조 유지·강화…'래미안' 위상 유효
정비사업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삼성물산이 '넥스트홈'을 앞세운 적극적인 수주 행보를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전략 수정은 정비사업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이에 미디어펜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삼성물산의 정비사업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삼성물산 정비사업 연대기-②현재]선별·클린수주 통해 '명분·실리' 잡다

[미디어펜=김준희 기자]삼성물산은 1994년 정비사업 분야 진출 이후 주택 브랜드 '래미안'을 앞세워 시장을 평정했다. 이는 2000년대를 넘어 2010년대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특히 2010년은 삼성물산의 정비사업 최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전 해인 2009년 수주액 약 1조7000억 원을 기록했던 삼성물산은 2010년 2조 원이 넘는 2조2000억 원가량 물량을 수주하며 선두주자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특히 그 해 서울시에서 도입한 재건축·재개발 공공관리제 시행을 앞두고 건설사 간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수주를 독식했다는 것은 의미가 컸다. 서울에서만 2조 원이 넘는 수주액을 기록했다.

텃밭으로 다져놓은 강남권을 비롯해 강북권에서도 재개발·재건축 구역을 휩쓸었다. 서울 마포구 '현석2구역' 재건축(1168억 원)과 서울 성북구 '장위11구역' 재개발(1880억 원),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5구역' 재개발(1681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된 건 이듬해인 2011년부터다. 수년간 정비사업 수위를 지켜오던 삼성물산은 그 해 경기 부천시 '심곡3B구역' 재개발 1곳만을 수주하며 수주액 2435억 원에 그쳤다. 1위는 2조5000억 원이 넘는 실적을 기록한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이례적인 한 해를 보낸 삼성물산을 두고 업계에서는 물음표가 붙었다. 2012년 상반기까지도 정비사업 수주가 1건도 없자 '삼성물산이 정비사업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당시 삼성물산 측은 "이미 정비사업 잔고가 3조7000억 원에 달해 기존 사업장 관리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라며 "향후에도 선별 수주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에는 공공관리제 도입을 비롯해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 건설 억제 등 서울시가 주택정책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고, 수도권 주택경기 침체도 지속되면서 정비사업에서 발을 빼는 대형 건설사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결국 2012년도 2011년과 마찬가지로 삼성물산 정비사업 수주 실적은 서울 서초구 '서초우성3차' 재건축 1건, 수주액은 946억 원에 머물렀다. 그 해 선두는 1조9000억 원 수주액을 기록한 대우건설이 차지했다.

삼성물산의 이러한 기조는 한동안 계속됐다. 2013년에도 삼성물산은 공사비 약 1200억 원 규모 경기 과천시 '주공7-2단지' 재건축 1건 만을 수주했다. 2014년 정비사업 실적은 ‘제로(0)’였다.

   
▲ 지난 2020년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시공사로 최종 선정된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아쉬움 삼킨 '래미안 타운'…그럼에도 유지한 수주 전략

근 몇 년간의 기조를 바탕으로 2015년 상반기까지 수주 실적이 없던 삼성물산은 하반기 서울 서초구 '신반포3차·23차, 반포경남아파트, 우정에쉐르1·2차' 통합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며 다시 수주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 해 말, 삼성물산은 당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 최대어로 꼽혔던 서초구 '무지개아파트' 재건축을 두고 GS건설과 맞붙는다. GS건설은 그 해 3분기까지 정비사업 수주 실적으로 무려 6조8000억 원가량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시장을 독식하고 있었다.

삼성물산과 GS건설은 지난 2012년 서초우성3차 재건축 수주전에서 한 차례 맞붙은 바 있다. 당시 접전 끝에 3표 차이로 GS건설이 패했다. 그 해 삼성물산의 유일한 정비사업 수주 실적이 바로 이 단지였다.

삼성물산은 이미 2001년 '서초우성1차' 재건축을 수주한 데 이어 2010년 '서초우성2차' 재건축까지 시공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서초우성3차까지 ‘싹쓸이 수주’를 통해 '래미안 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각오였다.

아울러 인근에 위치한 무지개아파트와 신동아아파트 재건축 수주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서초구에 대형 래미안 타운을 형성함으로써 이 일대를 강남 대표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서초동 입성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GS건설의 도전장에 삼성물산은 '전력 투구'로 답했다. 공사기간 등에서 GS건설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한편 아웃소싱(OS) 인력이 아닌 임직원이 직접 조합원을 만나 조합원 개개인을 설득한 것. 결국 조합원들의 마음을 동하게 한 삼성물산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접전승을 따냈다.

서초우성3차 승리 직후 무지개아파트에서는 GS건설과 '리턴 매치'를 벌인 끝에 323표 차로 패하게 됐다. 고배를 마셨지만 삼성물산의 선별·클린수주 전략은 지속됐다. 신규 실적을 늘리는 것보다는 기존에 수주한 사업장 관리 강화에 집중하고 사업성과 상품성, 수익성에 대해 보수적이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 수주를 이어간다는 기조였다.

또 당시 금품·향응 제공 등으로 혼탁했던 정비사업 시장에서 공정 경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그간의 공격적인 행보에서 다소 소극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수주 기조에 일각에선 '주택사업 철수설'까지 돌았지만 삼성물산은 언제든 정비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당시 정비사업 시장은 경쟁 과열로 인해 횡령 의혹 등으로 인한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등 굉장히 혼탁했던 시기"라며 "사업 참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기존보다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당시에도 사업 참여는 지속적으로 검토를 진행해왔고 실제 참여가 유력했던 현장도 있었으나 내부적으로 강화된 선별·클린수주를 위한 조건을 비롯해 타사와 경쟁 상황 등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검토가 이뤄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사업 참여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2020년 삼성물산이 재건축 사업을 수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 전경. 오는 2026년 '래미안 트리니원'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다./사진=미디어펜


◆'화려한 복귀' 이후 '조용한 강자' 행보…올해 변곡점?

더욱 신중해진 선별수주 기조로 래미안의 공백기는 의도치 않게 길어졌다. 오랜 침묵을 깨고 삼성물산이 시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2020년. 삼성물산은 그 해 4월 열린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조합 총회에서 75.9% 득표율로 시공사에 선정되며 래미안의 복귀를 알렸다.

당시 삼성물산이 휴식기를 갖는 사이 GS건설을 비롯한 다른 대형 건설사들은 잇따라 하이엔드 주택 브랜드를 출시하며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물산의 승리는 래미안의 건재함을 알리는 신호탄과 다름없었다.

이후 같은 해 5월 대우건설과 맞붙었던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반포3주구)'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승리하면서 삼성물산은 복귀와 함께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반포3주구는 삼성물산에 있어 승리의 의미가 남다른 단지 중 하나다. 당시 업계에서는 사업조건 등에서 삼성물산이 대우건설에 밀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랜드마크' 성격이 큰 단지였던 만큼 양 사 간 경쟁도 치열했다.

그러나 공백기에도 래미안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유효했다. 아울러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제시한 '100% 준공 후 분양' 등 승부수가 맞아 떨어지면서 삼성물산은 열세라는 평가를 뒤집고 69표 차 극적인 역전승을 거머쥐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모두가 질 것이라고 했던 현장이지만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승리를 거둬 더욱 의미 있고 뜻깊은 현장으로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5년여 만에 복귀전에서 반포 일대 대어들을 연달아 낚아채면서 삼성물산은 그 해 수주액 1조487억 원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마쳤다.

재건축 시장에서 위상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삼성물산은 2021년부터는 리모델링 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상반기 915억 원 규모 서울 강남구 '도곡삼호' 재건축과 1891억 원 규모 부산 동래구 '부산명륜2' 재건축을 수주하며 스타트를 끊은 삼성물산은 하반기 7월과 8월 각각 3475억 원 규모 서울 강동구 '고덕아남' 리모델링, 2836억 원 규모 서울 성동구 '금호벽산' 리모델링을 따냈다.

지난해에는 2010년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5구역' 이후 12년 만의 재개발 수주에도 성공했다. 7월 1895억 원 규모 서울 영등포구 '양평13구역' 재개발에 이어 10월 6762억 원 규모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재개발을 따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물산 정비사업 시공권 확보 실적은 △2020년 1조487억 원 △2021년 9117억 원 △2022년 1조8686억 원이다. 올해는 3753억 원 규모 서울 송파구 '가락상아2차' 리모델링, 2667억 원 규모 '가락쌍용2차' 리모델링 등 수주액 1조413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조용한 강자'로서 정비사업 시장에서 행보를 이어가던 삼성물산은 올해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다. 소비자 입맛에 맞게 내부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넥스트홈' 출시를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넥스트홈을 통해 삼성물산은 향후 정비사업에 있어 소비자에게 맞춤형 공간을 제공하고 차세대 홈 플랫폼인 '홈닉'을 앞세워 입주자의 라이프스타일 완성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김명석 삼성물산 주택본부장(부사장)은 "지금까지 집에 라이프스타일을 맞춰왔다면 넥스트 래미안에서는 집이 고객의 삶을 맞춰가는 진정한 의미의 주거 패러다임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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