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새정치민주연합 3선 중진인 박기춘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에 이어 10일 국회에 체포동의안까지 제출되자 탈당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폭로전으로 국민적 피로를 가중해온 새민련이 소속 중진의원의 비리 사건을 비호할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탈당을 종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문재인 새민련 대표는 지난 7일 검찰이 박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에 이르자 "당이 국민의 법감정이나 기준에 맞춰 엄정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며 "당이 방탄역할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박 의원을 구제할 뜻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흘이 지나 박 의원은 이날 "어느 때보다 당이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 극복에 온몸을 던져야 할 3선 중진의원이 당에 오히려 누가 되고 있다"면서 탈당과 함께 내년 20대 총선 불출마 계획을 밝혔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회동을 갖고 박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조원진 여당 원내수석은 기자들과 만나 "체포동의안은 12∼13일 중 처리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며 "야당에서 '방탄국회'까지 할 명분이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춘석 야당 원내수석은 "본회의 회부도 안 됐는데 우리가 어떻게 처리할 건가 논의하는 게 의미가 있느냐"면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원칙대로 당내 절차를 밟아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공식적으로는 원칙을 거스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국민 감정”, “국민 눈높이”라는 문 대표와 이 원내수석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야당은 ‘비리의원 감싸기’라는 대국민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것을 우려해 여당의 ‘원칙론’에 조심스레 대응한 것으로 관측된다.

   
▲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과 최민희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의원과에 성폭행 혐의로 탈당한 심학봉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국회 윤리위원회 징계 요구안을 제출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홍정수 기자

야당은 최근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의 성추문 사건을 계기로 여당에 연일 공세를 가하며 도덕적 우위를 점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야당 소속 전국여성위원회는 심 의원에 대한 징계와 의원직 사퇴를 종용하면서 그의 탈당을 받아들인 여당에는 “꼬리자르기를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일 비판했다. 또 ‘성폭행 혐의 없음’ 결론을 낸 경찰에 대해서는 ‘권력 봐주기’ 수사를 했다고 꼬집었다.

도덕적 우위를 노리고 정부·여당의 약점을 폭로해 여론전을 펼치는 방식은 야당의 오랜 정치적 생존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의 국정원 개입여부 및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 지난달 초부터 불거진 ‘국정원 해킹 의혹’ 등 야당은 여권에 대한 소위 ‘꼬리물기’ 식 의혹 공세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댓글 사건’과 연루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최근 대법원이 유·무죄 판단을 보류했고 이에 대해 폭로전을 펼쳤던 권은희 의원이 위증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진상규명을 위해 조직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실질적인 조사 작업에 착수하지 못한 채 예산 낭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최근의 ‘해킹 의혹’은 야당이 제기한 의혹 대다수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났으며 국정원 직원 임모과장 사망 관련 의혹과 정보위 차원의 현장검증 실시여부 등으로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국정원의 국내 민간인 대상 해킹·사찰여부라는 의혹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의혹 제기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국민적 피로를 가중시켜 온 야당은 최근 대여 공세의 무기로 삼은 소속 의원의 도덕성 논란과 함께 심 의원 성추문 사건에서 스스로 ‘꼬리자르기’라고 비난한 결과까지 고스란히 여론에 보이게 돼 섣부른 입장표명이 어려운 상황이다.

박 의원이 모든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만큼 당내 의원들은 이번 사건이 '야당 탄압' 성격이 아닌 비리 사건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으며 '비리의원 감싸기'로 비칠 우려 때문에 그에 대한 동정론도 선뜻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다만 본회의 표결을 거치되 찬반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에 맡기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박 의원 거취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편 박 의원은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분양대행업체 대표 김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억5000만원을 받고 그동안 받은 금품을 측근 정씨를 통해 돌려줘 범죄 증거를 숨긴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및 증거은닉 교사)로 지난 7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박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회에 제출했으며 이는 국회법과 여야 합의에 따라 11일 오후 3시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며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이후 24시간(12일 오후)~72시간(14일 오후) 이내 표결이 실시돼야 한다.

투표는 무기명으로 이뤄지며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 가결 요건이다. 기한 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체포동의안은 사실상 폐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