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GM '탈전기차' 가속화…K-배터리 수주잔고·가동률 '경고등'
EU 내연차 금지 철회로 판도 급변…ESS 전환·포트폴리오 다각화 사활
흔들리는 동맹 속 '현대차·기아' 협력 희망… 최후의 보루이자 기회
[미디어펜=박재훈 기자]지난 몇 년간 속도가 붙던 전동화 추세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과 혈맹을 맺었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최근 파트너십 유지에 미지근한 모습을 보인다. EU(유럽연합)의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조항이 후퇴함에 따라 포드 외 글로벌 브랜드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어 국내 배터리 업계의 전략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미국의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의 유럽향 배터리 계약을 해제하고 SK온과의 합작법인에서 손을 떼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포드를 신호탄으로 EU의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전동화 전환을 늦추거나 수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각국의 보조금 정책도 후퇴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의 EV 득세에 각국의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자구책 마련을 우선할 수 있어 내연기관의 퇴장이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포드의 '파트너십 취소'…K-배터리 찾아온 각자도생 청구서

   
▲ 블루오벌SK 테네시 공장 전경./사진=SK온


18일 업계에 따르면 포드는 최근 SK온과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는 유럽향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하는 등 한국 파트너사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SK온과의 결별 방식이다. 양사는 블루오벌SK를 해체 수준인 각자 운영 체제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포드는 켄터키 공장(37GWh)을, SK온은 테네시 공장(45GWh)을 독자적으로 책임지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성 확보지만 내막으로는 SK온에게 막대한 부담이 전가된 셈이다. 당초 포드 전기차에 전량 탑재될 예정이었던 테네시 공장의 물량을 이제는 SK온이 스스로 영업을 통해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SK온은 테네시 공장의 가동률 저하에 따른 고정비와 감가상각비를 떠안게 된 셈이다. 최근 미국 IRA(인플레이션 방지법)의 AMPC(첨단세액공제)도 축소되고 있어 재무적인 압박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포드로부터 9조6000억 원 규모의 계약 해지를 통보받으며 직격탄을 맞았다. 앞선 튀르키예 합작 공장 무산에 이은 연타석 악재다. 이는 포드가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비중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는 이를 단순한 물량 취소를 넘어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 간의 신뢰 관계가 단순 공급자 관계로 격하됐음을 시사한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미국의 완성차 업체 GM(제너럴모터스)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GM은 최근 캐나다 양극재 합작 공장 투자를 전면 보류하고 2025년 생산 목표를 폐기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 3공장 건설이 일시 중단된 데 이어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원가 경쟁력이 높은 각형이나 원통형 도입을 검토하며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글로벌 완성차들이 실적 악화를 이유로 한국 배터리사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는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EU의 '변심'과 공장 셧다운의 공포

   
▲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사진=LG에너지솔루션

이 같은 완성차들의 변심 배경에는 EU의 정책 후퇴가 주된 이유로 해석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조항을 사실상 철회하고 합성연료(e-퓨얼) 사용 내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급선회했다.

이런 EU의 선회 배경에는 유럽 소재의 완성차 브랜드들이 지난 몇 년간 전기차 판매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국 우선주의가 글로벌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도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전동화 추세에서 테슬라, BYD등의 중국 업체, 현대차그룹 외에는 판매량이 미진했던 면이 있었다"며 "유럽의 경우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이브리드를 무기로 존속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결정은 국내 배터리업계의 유럽 중장기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공장과 SK온과 삼성SDI의 헝가리 공장 등 국내 기업들은 유럽의 전동화 드라이브를 믿고 선제 투자를 단행하면서 대듀모 생산 거점을 구축했다. 그러나 내연기관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전기차 배터리 수요 회복 시점은 2028년 이후로 밀릴 공산이 커진 셈이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공장 가동률이다. 현재 유럽 공장의 가동률은 50~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10%의 가동률 하락은 수천억 원의 고정비 손실로 직결된다. 파트너십 해지로 인한 유휴 라인은 즉각적인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이에 배터리 3사는 'ESS(에너지저장장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전기차용 라인을 개조해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으로 급증하는 ESS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기존 고성능 삼원계(NCM) 배터리만 고집하던 전략을 수정해 보급형 전기차를 위한 LFP(리튬, 인산, 철) 및 미드니켈 배터리, 그리고 하이브리드 차량용 고출력 배터리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호근 교수는 "배터리 제작사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시기가 될 것"이라며 "중국과 어떻게든 출혈경쟁을 해서라도 공급망 경쟁을 펼쳐야 하고 ESS쪽으로 치중하면서 혹한기를 버텨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흔들리는 동맹 속 '현대차·기아'는 최후의 보루

   
▲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사진=현대차그룹


글로벌 파트너들의 이탈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과의 협력 관계는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포드나 GM이 급격한 선회를 하며 파트너십을 깬 것과 달리 현대차와 기아는 숨 고르기를 하면서도 전동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를 일부 조정했지만 북미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배터리 합작공장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아우르는 유연한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는 브랜드로 꼽힌다. 전기차 수요가 주춤할 때 하이브리드로 수익을 내며 배터리 파트너사들에게 최소한의 물량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완성차 업체다.

업계 전문가는 "북미 시장에서 포드와 GM이 발을 빼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가장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앵커 클라이언트"라며 "특히 SK온의 경우 포드와의 결별로 생긴 테네시 공장의 유휴 물량을 현대차의 신형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모델로 돌리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수의 브랜드들이 전동화에서 주춤하고 있음에도 현대차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 브랜드들의 기술력이 재편되는 시기에 맞춰 전기차의 사이클이 돌아올 경우 격차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근 교수는 "전기차는 결국 정책에 따라 상황이 변화하기 때문에 각국의 정책과 시장의 개폐 여부에 따라 대응하고 선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배터리 업계가 대응에 미진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있다. 그 동안 너무 급진적으로 투자를 추진했음에도 정책적인 상황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연기관 체계를 등한시 했고 현업에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시야가 좁았던 것"이라며 "경영학적으로도 다양한 시나리오 플랜을 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응을 위해서는 하나의 전략만 갖고 경영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정책변화로 인해 타격을 받게 될 기업 입장에서는 플랜B를 짜놨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이차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 기업들이 보는 시각을 변화하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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