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1500원대를 위협하는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수출·내수 비중에 따라 명암이 갈리고 있다. 같은 산업 안에서도 글로벌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환차익과 수익성이 개선되는 모습이지만, 내수와 수입 원료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수익성 확보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고환율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는 달러 매출 비중이 높은 CDMO(위탁개발생산) 및 글로벌 신약·바이오 의약품 수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매출과 계약이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에 환율이 오를수록 동일한 달러 매출이 원화로 환산될 때 재무제표상 이익이 커지는 구조다. 반면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을 해외에서 들여와 주로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통 제약사들은 원가율이 상승하는 반대 효과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달러로 거래하는 바이오…"같은 거래·수주에도 원화로는 이익"
| |
 |
|
| ▲ 삼성바이오로직스 제 5공장./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다. 글로벌 빅파마를 고객으로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장 가동률과 수주 잔고 대부분이 달러 기반이라 환율 레버리지가 크다.
실제로 환율 10% 상승 시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이 1000억 원 이상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환율 변화에 대한 이익 민감도가 높은 편이다. 환율이 오를수록 동일한 규모의 수주라도 원화 기준 인식 이익이 커져 공장 증설과 수주 확대가 맞물리면 이중 레버리지가 발생할 수 있다.
SK바이오팜 역시 고환율 국면에서 유리한 면모가 크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 중인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 매출이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해 실질적으로 달러 단일 통화에 베팅한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매출이 달러로 잡혔다가 원화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환율이 높으면 그만큼 원화 기준 실적이 부풀려지는 효과가 난다. 수출 물량이나 처방량이 일정하더라도 환율이 상승하면 매출과 영업이익률이 자연스럽게 개선되는 셈이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을 주력으로 글로벌 매출 비중이 높은 일부 대형 바이오텍들도 구조는 비슷하다. 자체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을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 공급하는 기업은 매출 대부분이 달러·유로 등 외화로 인식된다.
여기에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계약이 있으면 계약금과 마일스톤이 외화로 들어오는데 고환율 상황에서는 계약 규모가 원화 기준으로 더 커 보이는 효과를 낳는다. 신약 파이프라인이 다수인 기업일수록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의 환율 수준에 따라 재무성과의 체감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내수집중 제약사들 '고충'…원료의약품 비용에 수익성 '울적'
반면 국내 도매·의원·병원 시장에 집중된 내수 중심의 전통 제약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 기업은 국내 건강보험 약가에 묶여 있어 판매 단가 인상이 쉽지 않은 반면 원료의약품과 부자재를 상당 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곧바로 원가 부담이 높아지지만 이를 약가나 납품단가에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서서히 잠식되는 구조다. 일부 상위 제약사의 경우 수출·기술수출 비중 덕분에 환율 10% 상승 시 순이익이 소폭 개선된다는 분석도 있으나 단위 규모가 수십억 원 수준에 그쳐 고환율 수혜로 보기엔 미미하다.
이같은 문제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으로 지목되는 부분인 ‘원료의약품 수입 의존도’와 연관된다. 국내 완제의약품 생산이 꾸준히 증가해 왔음에도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쓰이는 원료의 상당 비중이 중국·인도 등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다.
이는 평상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이점이 될 수 있지만 고환율·공급망 불안이 겹치는 시기에는 원가 리스크로 작용한다.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수입 원료 단가에 환차손까지 더해져 매입원가가 급등하고 재고를 쌓아둘수록 평가손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 |
 |
|
| ▲ 제약사 연구원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사진=픽사베이 |
또한 국내 의약품 가격 구조 특성상 원가 상승분을 신속하게 약가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보험 약가는 정부와의 협상 및 제도 개선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원료비 인상분을 단기간에 전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결국 제약사는 일정 기간 수익 감소를 감수하면서 버텨야 하고 재무 여력이 약한 중소 제약사는 생산 축소나 품목 정리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저수익 제네릭 품목에서는 고환율과 원가 상승을 이유로 생산을 포기하거나 도매 공급 가격을 인상하려다 거래처와 마찰을 빚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해외 임상·글로벌 개발 전략을 추진 중인 기업들에게도 고환율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신약 1개 개발에 평균 수조 원이 소요되는 가운데 임상시험 비용 대부분은 달러로 지출된다.
환율이 높을수록 같은 임상 계획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원화 투입액이 커져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재무적 부담이 커지게 된다. 특히 매출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임상 단계 기업은 매출로 상쇄할 외화 유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비용만 달러로 지출돼 고환율 환경이 지속될수록 자금 조달과 투자 집행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회장은 "원료의약품의 경우 부족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며 국제적인 공급망이 살아있을 때는 부족해도 다른 곳에서 수입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으나 지금처럼 공급망이 위축됐을 경우 위험성이 올라간다"며 "특정 물품이 들어오지 못할 때 그것이 기술적으로 크게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