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쿠팡이 이커머스에 이어 OTT와 배달앱까지 석권하게 되는 상황이 두렵습니다. 이미 자금력에서 비교가 안되는데, 앞으로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질 거에요. 쿠팡이 완벽한 독점을 구축한다면 소비자에게도 손해가 될 겁니다.”
온라인 플랫폼 생태계와 관련해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가 푸념했던 말이다. 경쟁에서 밀린 플랫폼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쿠팡 독점 체제가 굳어지고, 그 뒤엔 쿠팡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였다.
당시 해당 관계자의 발언은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쿠팡과 경쟁하는 업체에 힘을 실어달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피해자만 3370만 명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라는 방식으로, 조금 이른 시점에 현실이 됐다.
그간 쿠팡은 물류 혁신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다. 대규모 물류 인프라 투자와 풀필먼트 시스템 구축, 직매입을 통한 가격 경쟁력 및 CS 개선 등이 집약된 ‘로켓 배송’은 익일 새벽배송을 구현하며 전 국민의 생활 습관을 뒤바꿨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쿠팡의 모토대로, ‘대안이 없는’ 서비스는 쿠팡 급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쿠팡은 성장이 궤도에 오르자 ‘혁신 기업’보단 ‘독점 기업’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독점 기업’이 시장에 어떻게 해악을 끼치는지 경제학 교과서에 예시로 실어도 될만한 모습이다. 쿠팡은 ‘와우 멤버십’에 기반해 OTT 시장과 배달앱 시장에 발을 뻗쳤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출혈경쟁과 멤버십 끼워팔기는 ‘혁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쿠팡은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명분으로, 소비자 반발에도 불구하고 ‘와우 멤버십’ 가격을 대폭 인상하기도 했다.
경제학에서는 독점 기업이 새로운 혁신을 선보이는 대신, 막대한 자본으로 진입 장벽을 세워 혁신을 가로막는 것으로 본다. 또 수요와 공급이 아닌 독점 기업이 시장 가격을 결정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후생 손실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론적인 내용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할 순 없으며, 기업의 사업 다각화나 요금 인상 등 경영상 판단을 ‘해악’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 쿠팡 측도 이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일련의 대처에 대해서는 ‘독점 기업’의 해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사태의 단초가 된 허술한 보안 관리는 비대해진 조직의 방만한 경영으로, 매출 대비 0.2%에 불과한 보안 관련 투자는 혁신 유인의 부족으로 읽힌다. 사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보다 ‘대관’ 중심 로비에 치중하는 행보는 독점적 기업의 전형적인 ‘지대 추구 행위’나 다름없다.
특히 국민적 공분을 사는 것은 쿠팡의 ‘오만’한 태도다. 이전에 발생했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기업의 최종 책임자들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인 것과 달리,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의장은 아직 형식적인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숨기듯 걸어놓은 사과문에서는 ‘노출’이란 표현을 사용하더니, 정부에 등 떠밀린 뒤에야 ‘유출’이라 바로잡았다. 외국인 법률가를 대표로 내세워 국회 청문회조차 맹탕으로 만드는 ‘꼼수’에서는 “법적인 책임만 피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엿보였다.
쿠팡의 대응은 한국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확실하게 굳혔다는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쿠팡에선 이전에도 각종 노동 문제를 비롯해 입점 업체 대상 갑질, 정보 유출 사고 등이 발생했었지만, 미지근한 정부 대응과 우상향하는 매출 실적은 쿠팡의 고개를 한층 뻣뻣하게 만들었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혁신 모토는 ‘어차피 쿠팡 없이 어떻게 살겠나’라는 자만으로 퇴색됐다.
독점 기업은 시장 비효율적이다. 소비자 후생 손실을 유발하고 기업들의 혁신 경쟁을 저해한다. 이 때문에 쿠팡이 본사를 둔 미국에서도 ‘반독점법’을 통해 독점 기업의 출현을 엄격하게 막고 있다. 쿠팡이 아직 ‘완전 독점 기업’은 아니지만, 현재 시장 지위만으로도 ‘독점 기업’을 견제해야 할 당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로켓 배송’이 주는 효용과 사회적 비용을 다시 저울질해야 할 때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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