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약 2년 가량 표류해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지명경쟁입찰 방식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수의계약과 공동설계 방안도 거론됐지만, 결국 각 기업의 기술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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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의 조감도./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방위사업청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 방식을 제한된 경쟁 체제로 의결했다. 이번 결정은 기존의 수의계약과 공동설계 방안을 모두 배제한 절충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지명경쟁 전환…기술력 중요성 커져
관례적으로라면 기본설계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맺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법이었지만 공정성 논란과 정치적 부담이 컸다. 반대로 공동설계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간의 사업 주도권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명경쟁은 제한된 업체만 참여하되 경쟁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방식으로 방사청의 현실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KDDX 사업은 국내 기술로 선체와 전투체계를 모두 구현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으로 7조8000억 원 규모 예산 아래 6000톤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은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당초 2023년 말 기본설계 완료 이후 곧바로 상세설계 단계로 넘어갈 예정이었지만, 사실상 양사의 명운이 걸렸다 할 만큼 큰 사업이기에 경쟁이 과열되며 방사청에서 결정을 보류한 체 장기간 지연됐다.
이번 지명경쟁 체제 전환으로 양사의 경쟁 구도는 보다 명확해질 전망이다. 이날 방사청이 결정한 경쟁 입찰 방식이 크게 가격(20점), 기술(80점)으로 100점 만점으로 평가되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인 만큼 양사의 기술력이 수주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 내부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한 논란은 평가 항목에서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문제 삼았던 군사 기밀 유출 사건 유죄 판결에 따라 감점 1.2점을 부여받은 상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추위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간 지켜져 온 원칙과 규정이 흔들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방추위의 결정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계획이며, 향후 절차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계 연속성 vs 체계 통합…HD현대·한화오션 장단점 명확
먼저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로서 설계 연속성과 대형 수상함 건조 경험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과거 국내 함정 사업에서 기본설계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까지 이어간 사례가 많다는 점도 평가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세종대왕급(KDX-Ⅲ) Batch-I 사업은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를 HD현대중공업이 일괄 수행했으며 이후 후속함까지 동일 체제가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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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DDX 가상 시운전 조감도./사진=한화오션 제공 |
한화오션은 KDDX 개념설계를 수행하며 사업 초기 단계에서 설계 방향과 작전 개념 설정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개념설계 단계에서 축적한 함형 구성과 전투체계 배치에 대한 이해도가 이후 상세설계 경쟁에서도 일정 부분 반영될 수 있다는 평가다.
또한 장보고-Ⅲ 잠수함 사업을 비롯해 고난도 특수선과 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선체, 전투체계, 추진체계를 통합 관리한 경험은 한화오션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실제로 장보고-Ⅲ 사업은 고도의 체계 통합과 국산화 역량이 동시에 요구된 사업으로, 복합 전투체계와 플랫폼 통합 능력이 요구되는 KDDX 사업과 기술적 성격이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방산 사업 전반에 걸친 사업 관리 경험 역시 강점으로 평가된다. 대규모 국책 방산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축적한 일정 관리, 협력업체 통합, 리스크 관리 역량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구축함 사업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구축함·호위함 등 대형 수상함을 동일 설계 체계 하에서 연속 양산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한화오션은 KDDX 개념설계를 수행하며 초기 설계 방향 설정에는 깊이 관여했다. 다만 구축함·호위함급 대형 수상함을 동일 설계로 연속 양산한 경험은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KDX-II), 세종대왕급 구축함(KDX-III) 등의 기본설계~후속함 건조 경험을 보유한 HD현대중공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한화오션의 강점은 장보고-Ⅲ 잠수함처럼 사업 난도가 높은 특수선과 잠수함 분야에서의 체계 통합과 사업 관리 경험에 집중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양사 간 갈등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번 결정으로 경쟁의 중심이 법적 대응과 여론전에서 기술·관리 역량 평가로 옮겨간 점이 의미 있다는 평가다.
결국 평가 항목과 배점이 최종 승부를 좌우하게 되면서 양사는 각자의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리스크 요인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경쟁 전략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HD현대중공업은 설계 연속성과 대형 함정 건조 경험을, 한화오션은 체계 통합과 첨단 설계 이해도를 각각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명경쟁은 결단이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며 “경쟁 방식이 법과 여론전에서 평가표 안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관점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자의 기술적·관리적 역량을 평가 항목에 맞춰 전략적으로 부각시키며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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