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련소 건설 결정…약 11조원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
미국 현지 공급망 주체로 자리매김…공급망 구축에 기여
최윤범 합작법인 통해 10% 지분 확보…경영권 방어 가능
[미디어펜=박준모 기자]고려아연이 미국에 제련소 건설 투자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카드로 평가한다. 공급망 전략과 정책적 명분, 지배구조 효과까지 동시에 겨냥하면서 최윤범 회장의 승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고려아연이 미국에 제련소 건설 투자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사진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사진=고려아연 제공


23일 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늦어도 24일까지 영풍·MBK가 신청한 고려아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신청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에 대해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미국에 제련소 투자를 위해 미국 정부 및 전략 투자자와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특히 회사는 지분 약 10%를 추가로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합작법인은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지분 10%를 확보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영풍·MBK 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고려아연의 신주발행 기일이 26일로 예정돼있는 만큼 법원은 26일 전까지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쟁력 제고에 정책적 상징성까지 확보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는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온산제련소와 호주 제련소를 통해 전 세계 수요에 대응해 왔으나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확대되고, 미국 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현지 생산 역량 확보가 필요해졌다. 

이에 북미 시장의 중장기 성장성을 선점하고,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이번 투자를 결정했다는 게 고려아연 측의 설명이다. 

이번 투자는 단순한 해외 투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부는 배터리,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핵심 광물과 소재의 자국 내 공급망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련소를 구축함으로써 현지 공급망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사업은 약 11조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미국 제련소는 아연·연·구리 등 주요 비철금속과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게르마늄·갈륨 등 전략 광물을 통합 생산 및 회수하는 복합 비철금속 제련소 건설을 목표로 한다. 

2027년부터 2029년까지 건설을 진행할 예정이며, 건설 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상업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책적 상징성도 크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역시 대미 투자의 일환이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7일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에 대해 “고려아연뿐 아니라 우리나라 입장에서 희토류나 희귀광물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며 “고려아연이 재무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판단을 한 것에 대해 희귀광물을 담당하는 주무 장관으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한미동맹을 경제안보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중”이라며 “우리 정부도 산업계와 함께 원팀으로 뛰고 있다”며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도 “고려아연의 미국 내 제련소 투자는 한미동맹이 첨단 경제안보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사진=고려아연 제공


◆영풍·MBK 이사회 장악 막을 카드로 부상

또한 이번 투자는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는 전략적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풍·MBK 측은 현재 고려아연 지분 44.24%를 확보한 상태다. 꾸준히 지분을 확보하면서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해 나갈 계획이었는데 이번 미국 제련소 투자로 인한 유상증자가 변수로 떠올랐다. 

반면 최윤범 회장은 이사회를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19.41%로, 우호 지분을 포함하더라도 32%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유상증자로 인해 신규로 발행되는 지분 10%를 추가로 우군으로 확보하게 된다. 

특히 신주발행에 따라 영풍·MBK 측의 지분은 40% 수준으로 희석된다. 최 회장 측도 지분은 희석되지만 10% 추가 우군을 확보하게 돼 양측의 지분 격차는 대등한 수준으로 좁혀지게 된다. 결국 영풍·MBK 측의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남아있지만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는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 장기 성장 전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신의 한수’로 평가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경우 신사업 등 중장기 성장 계획을 차질 없이 실행할 수 있게 된다”며 “아직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지만 최 회장의 승부수가 다시 한번 통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