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상문 기자] 아침 햇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 물안개와 은빛 갈대를 보듬자, 하늘에서는 철새들이 아름다운 비행을 펼친다. 이제 이 풍경은 순천만 습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겨울 풍경이 됐다.

순천만은 S자 모양의 수로를 품은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 칠면초 군락을 비롯해 망둥어와 참게 등 다양한 갯벌 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겨울철이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온 희귀 조류들의 쉼터가 된다. 각종 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 독수리 등 전 세계가 각별히 보호하는 희귀 조류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 가운데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는 더욱 특별하다.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멸종위기종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보호에 힘쓰고 있는 새다.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흑두루미의 절반 이상이 순천만 습지를 찾는다.

   
▲ 은빛 갈대와 어우러진 철새들의 아름다운 비행은 순천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겨울 풍경이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과거 순천만을 찾은 새들은 관광 상품으로 전락돼 인간의 간섭이 당연시 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순천시가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전봇대 철거와 월동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자 흑두루미의 귀환이라는 놀라운 변화로 이어졌다.

그동안 흑두루미의 주요 월동지인 대대뜰 일대 논습지에 세워진 전봇대와 고압선은 새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날개를 펼치면 2미터에 가까운 흑두루미들이 비행 중 전선에 부딪히는 사고가 잦아지면서 불안전한 서식 환경은 흑두리미를 일본으로 날아가는 일이 반복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순천시는 2009년 흑두루미 보호를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대대뜰을 중심으로 전봇대 282개를 뽑고 전선을 지중화해, 논 위의 하늘을 흑두루미에게 돌려준 것이다. 또한 2026년까지 안풍들 일대의 전봇대를 추가로 철거해 서식지를 확장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순천만 관계자는 “전봇대 철거는 단순한 시설 이전이 아니라, 자연의 생명을 인간의 편의보다 우선하겠다는 약속이었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수치로도 분명히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200마리 남짓이던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2023년 겨울에는 약 1만 마리가 이곳에서 월동했다.

생태계 회복은 지역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봇대 없는 논’에서 수확한 쌀은 ‘흑두루미 쌀’이라는 친환경 브랜드로 판매되며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다. 생태 보전과 지역 경제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 순천만은 전 세계 흑두루미의 절반 이상이 날아오는 최대 월동지로 자리 잡았다. 최근 조사에서 약 1만 마리가 관측돼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순천만은 흑두루미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다. 오염이 적은 갯벌과 염습지에는 다양한 어패류와 무척추동물, 염생식물이 자란다. 넓은 갈대밭은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25종을 포함해 국내외 22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보금자리로,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특히 순천만은 우리나라에서 흑두루미가 안정적으로 겨울을 나는 유일한 곳이다. 매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월동한다. 최근에는 흑두루미의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져 사람과 20미터 거리까지 다가오는 반가운 모습도 관찰되고 있다.

인간의 정책 하나가 생태계 회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 최근 흑두루미의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져 사람과 20미터 거리까지 다가오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생태 복원 효과는 지역 사회로도 확산되고 있다. ‘전봇대 없는 논’에서 재배한 친환경 쌀은 ‘흑두루미 쌀’이라는 브랜드로 출하되며 지역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사진은 철거 예정인 전봇대와 먹이 활동에 열심인 흑두루미.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전봇대가 사라진 순천만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흑두루미의 날갯짓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자 우리가 지켜낸 생태적 가치의 상징이 되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순천만은 흑두루미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의 보고로도 평가받는다. 오염원이 적은 갯벌과 염습지에는 질 좋은 수산물과 다양한 저서성 무척추동물, 염생식물이 분포하고 있으며, 갈대밭에는 검은머리갈매기·황새·저어새·노랑부리백로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25종을 포함해 국내외 조류 220여 종의 서식처가 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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