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기업결합 승인 조건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 64억60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으면서, 항공업계를 둘러싼 좌석 공급 규제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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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항공 여객기./사진=대한항공 제공 |
업계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제선 수요 회복이 노선별로 뚜렷한 편차를 보이는 상황에서 2019년을 기준으로 한 획일적인 좌석 유지 의무가 현실과 괴리돼 있다고 지적한다.
24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에서 2019년 대비 좌석 공급을 90%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해당 노선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공급한 좌석 수는 8만2534석으로, 2019년 같은 기간(11만8728석)의 69.5% 수준에 그쳤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에는 58억8000만 원, 아시아나항공에는 5억80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이 각각 부과됐다.
공정위는 항공사 간 결합 이후 공급 축소를 통한 우회적인 운임 인상을 차단하기 위해 좌석 유지 의무를 승인 조건으로 부과했다는 입장이다. 운임을 직접 규제하지 않는 대신 공급 물량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도록 해 소비자 선택권과 경쟁 질서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공정위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계열 항공사 일부 국제선에 대해 2034년까지 2019년 대비 90% 이상의 좌석 공급을 유지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과징금 사안에 대해 “공식 의결서 수령 후 처분결과에 대한 구체적 사유 및 대응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기준이 항공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먼저 항공사는 통상 계절성과 수요 흐름에 따라 짧게는 하계·동계 등 시즌 단위, 길게는 1년 단위로 노선별 공급 전략을 조정한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수요 편차가 큰 국제선 특성상, 일정 기간의 평균 수요를 기준으로 기재 투입과 운항 편수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다만 공정위가 이번에 산정한 좌석 공급률은 양사의 기업결합을 최종 승인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3개월로 한정됐다. 축소된 기간으로 항공사의 공급률을 평가하면서 기준 충족 자체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또한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어포털)에 따르면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의 여객 수요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공정위 산정 기준인 지난해 12월~올해 3월까지 해당 노선의 총 운항 편수는 1043편, 탑승객 수는 14만9138명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전년비(1248편, 16만5578명)에 비해 편수와 여객 수 모두 줄어든 수치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부담이 극단적인 사례로도 드러났다. 지난달 7일 인천에서 출발한 180석 규모 대한항공 KE2260편 유럽행 항공편에는 승객이 단 3명만 탑승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항공 수요의 변동성과 노선별 특성을 고려한 보다 유연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소비자 보호라는 공익적 목적과 항공사의 지속 가능한 경영 사이에서 좌석 90% 규정이 현재의 시장 환경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좌석 유지 의무 자체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수요가 감소하는 노선에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항공사는 운항을 유지할수록 손실이 누적되는 구조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고유가와 지정학적 리스크, 노선별 수요 편차가 상시화된 환경에서는 공급률 산정 방식과 적용 기간에 대한 유연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보호와 경쟁 질서 유지라는 공익적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항공사가 현실적인 경영 판단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균형점을 찾는 것이 향후 항공 정책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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