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조건별 구조적 통제 판단 기준·쟁의 대상 명확화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정부가 내년 3월 10일 시행되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구체화한 해석지침(안)을 내놨다. 개정안 핵심 쟁점이었던 '원청 사용자성'과 '쟁의행위 범위'를 둘러싼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 고용노동부 정부세종청사./사진=미디어펜


고용노동부는 현장 제도 안착 지원을 위해 26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20일간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 해석지침(안)을 행정예고하고, 이 기간 중 노사와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이번 해석지침 행정예고의 배경으로 '현장 예측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간 개정 노동조합법은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했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노사 간 해석 차이가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번 행정예고는 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인 만큼 현장 의견을 토대로 해석 기준을 정리해 투명성을 높이고, 시행 초기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해석지침은 법 개정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사례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개정 노동조합법에서는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경우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원청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하청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노동부 해석지침은 이 핵심의 판단 기준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제시했다. 예컨대 원청사용자가 하청 소속 근로자의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의 결정을 구조적으로 제약해 하청사용자가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본질적·지속적으로 제한하는 경우,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가 인정된다.
 
구체적으로 ▲원청사용자가 특정 공정에 필요한 인력의 수, 자격, 기능 등 인력 운용의 틀을 지정·변경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등(인력 운용) ▲원청의 생산공정 방식·교대운영과 상시적으로 연동돼 하청 교대제, 근무시간(연장근로, 휴일근로 등)이 구조적으로 결정되는 경우 등(근로시간) ▲원청이 세밀한 작업지시서·관리시스템 등을 통해 업무 배정, 순서, 방식 등을 결정하는 경우 등(작업 방식) 등이다.

다만 구조적 통제를 판단함에 있어 도급계약 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 상대방 소속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시했다. 즉, 일반적인 도급계약 관계에서 도급목적 달성을 위해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일반적으로 계약이행 내용이나 절차에 관해 요구하거나 협의·조정하는 것은 계약상 관리범위 내 행위로 봐야 하고, 이는 구조적 통제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간 법원 판결에서 원청의 사용자 여부 판단 시 활용됐던 '원청의 사업에의 편입'과 '경제적 종속성' 등 요소는 근로 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에 대한 보완적 지표로 고려했다.

해석지침은 사용자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로조건별로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구조를 택했다. 예컨대 노동안전에 대해서만 구조적 통제가 인정된다면, 교섭 의무도 해당 영역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노동 안전의 경우 원청이 작업공정·안전절차 등 전반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지배·통제하고, 원·하청 노동자가 동일 공간에서 작업해 하청이 단독으로 위험 요인 제거 등 구조적 개선이 어려운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복리후생(통근버스·휴게시설)이나 근로시간도 원청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거나 승인권을 행사하는 경우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임금·수당은 원청이 투입 근로자의 수, 근로시간 등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 인상률, 각종 수당 기준을 직접 제시하는 등 하청사용자 재량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반면, 도급인이 평균적인 임금 수준과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잠정 인원 등을 활용해 도급 총액을 정하고, 도급총액 범위 내에서 수급인이 자율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등 경우에는 사용자성이 인정될 여지가 적다고 명시했다.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법령·조례나 국회 예산에 따른 집행은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예산 집행 과정에서 정부나 위탁기관에 재량이 있는 경우에는 개별 사안별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아울러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제5호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근로자 지위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및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 해석지침을 새롭게 포함했다.

고용부는 사업경영상 결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근로자 지위 또는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경우 노동쟁의 대상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합병·분할·매각 같은 기업 조직 변동 결정 자체는 대상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배치전환 등 고용 조정이 발생하면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개정으로 그간 교섭 대상이 아니었던 정리해고 등에 대해서도 교섭이 가능해졌다. 고용부는 "고용조정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노조가 고용 보장 요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해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징계·승진 기준 설정 및 변경 요구 등에 관한 이익분쟁이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됨을 명확하게 했다. 노조법 제92조제2호 중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인 '가목부터 라목까지'에 대한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란 단체협약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여 해석상 다툼의 여지가 없음에도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이행한 경우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사용자가 단체협약 위반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이행하지 않거나, 노동위원회의 노동쟁의 조정이나 지방고용노동관서의 노사 교섭지도 과정에서도 위반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경우 등을 말한다.

개정법에 근거해 권리분쟁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노동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 간 합의사항의 미이행에 대해서는 노사 간 실질적인 교섭을 촉진하고, 조정을 통해 자율적 분쟁 해결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정에 대해 사실상 모든 하청이 교섭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경영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구조적 통제는 예외적 상황이며, 대부분의 독립적 도급 관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내하청처럼 원·하청 공정이 밀접하게 연동돼 하청의 자율성이 구조적으로 제한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라며 "일반적인 납품형 도급까지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고용부는 이번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접수된 의견을 토대로 지침을 보완해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권창준 차관은 "원하청 상생 성장을 위해 대화 자체가 불법인 상황을 해소하고 불법파업과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극한투쟁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서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예고기간 중 다양한 현장 의견에 귀 기울이고 토론 등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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