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테슬라코리아가 중형 전기차 가격을 대폭 인하하면서 국내 전기차(EV) 시장이 테슬라발 가격 인하 쇼크로 요동치고 있다. 테슬라의 이번 가격 인하 정책은 단순한 프로모션 수준을 넘어 경쟁사들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운 수준까지 마진을 깎아 시장 점유율을 독식하겠다는 '치킨 게임'의 서막으로 풀이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코리아는 최근 주력 모델인 모델3와 모델Y의 가격을 기습적으로 인하하며 사실상 시장 내 '가격 질서 파괴'를 선언했다. 테슬라는 모델3 퍼포먼스 AWD의 판매 가격을 기존 6939만 원에서 5999만 원으로 940만 원 인하했고, 모델Y 프리미엄 롱레인지 AWD는 315만 원, 모델Y 프리미엄 RWD는 300만 원 각각 낮추는 등 주요 트림 가격을 대폭 조정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중국 기가상하이 생산 물량을 기반으로 확보한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압도적인 생산 효율성을 무기로 경쟁사들을 적자 늪으로 몰아넣는 이른바 ‘생태계 파괴’ 전략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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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슬라 슈퍼차저./사진=테슬라코리아 제공 |
◆ 완성차 업계의 깊어지는 딜레마…마진 vs 점유율
테슬라가 쏘아 올린 가격 전쟁의 파장은 현대차와 기아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게 가혹한 선택지를 강요하고 있다. 업계는 마진 방어와 점유율 사수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할 경우 전기차 부문의 영업이익률 하락과 적자 전환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현재의 수익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가 정책을 고수한다면 가성비를 앞세운 테슬라와 중국계 저가 브랜드에 시장 주도권을 내줄 위험이 크다.
테슬라의 공격적 가격 전략은 단순 프로모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EV 생태계 전반에 가격 민감도가 급격히 확산되는 신호이자, 보조금·금융 조건·재고 관리 등을 포함한 시장 전략 전반을 재점검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26년은 중국 브랜드의 저가 공세까지 본격화되면서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제조사들은 단순한 할인 경쟁을 넘어 차세대 플랫폼 전환과 공급망 내재화를 통한 구조적인 원가 절감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 좁혀진 보조금 격차…현대차·기아 '방어막' 사라졌다
정부의 올해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은 이러한 가격 전쟁에 더욱 불을 붙였다. 올해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현대차 중형 전기승용차에 적용되는 국비 보조금은 250만∼570만 원 수준이며, 테슬라 차량은 168만∼420만 원이 적용된다.
현대차 '더 뉴 아이오닉6' 주요 트림과 기아 '더 뉴 EV6 롱레인지' 일부 트림에는 570만 원의 국비 보조금이 지원된다. 이는 올해 중형 전기승용차 국비 보조금 상한에 근접한 수준이다. 테슬라 차량 중 가장 많은 국비 보조금을 받는 모델은 420만 원이 지원되는 '모델3 프리미엄 롱레인지 RWD'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테슬라 모델에는 168만∼210만 원 수준의 보조금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국산차와 테슬라 차종 간 국비 보조금 격차는 지난해 370만 원에서 올해 150만 원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격차 축소가 가격 경쟁의 완충 장치를 약화시키면서 테슬라의 가격 인하 효과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테슬라가 차량 가격을 최대 940만 원까지 선제적으로 인하하면서 보조금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실질적 가격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산 전기차를 지탱하던 핵심 경쟁력인 보조금 우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시장은 이제 순수한 제품력과 브랜드 가치, 그리고 극한의 가성비가 충돌하는 진검승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보조금이라는 든든한 방어막 없이 테슬라의 파격적인 할인가와 정면 대결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다.
◆ "어제의 충성 고객이 오늘의 피해자"…중고차 가격 역전 현상에 분통
테슬라의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계기로 이른바 '테슬람(테슬라와 이슬람의 합성어·테슬라 팬덤을 지칭)'으로 불리는 충성 고객층 내부의 균열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기습적인 인하 직전에 차량을 인도받은 기존 차주들 사이에서는 배신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며 브랜드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는 반응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중고차 시장도 혼돈에 빠졌다. 신차 가격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출고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중고차 가격이 현재 판매되는 신차 가격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실제 일부 매물은 가격 조정이 이뤄지지 못한 채 거래가 지연되거나 매물만 쌓이는 모습도 관측된다. 자산 가치 보전이 중요한 자동차 시장에서 이러한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테슬라가 공고히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뒤흔드는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가격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중고차 잔존가치 하락과 가격 예측 가능성 훼손이라는 부작용을 동시에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차 구매 시점에서 잔존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소비자들의 구매 판단 자체가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 가격이 900만 원 이상 급락하면 중고차 가치는 그 이상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 "제조사가 예측 불가능한 가격 정책을 반복할 경우, 향후 중고차 잔가 방어가 어려워져 신차 구매 심리까지 위축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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