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727억 적자…희망퇴직·채널 조정 등 누적된 '비효율' 털어내
"중국·면세 줄이고 미국·일본 키운다"…해외 사업 포트폴리오 대전환
이선주 사장 "과학 기반 뷰티 기업 도약"…2026년 재도약 원년 선포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LG생활건강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체질 개선' 승부수를 띄웠다.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과 유통 채널 재정비를 통해, 그동안 미래 성장을 가로막던 비효율을 제거하겠다는 '이선주호(號)'의 결단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적자를 두고 LG생활건강이 2026년 퀀텀 점프를 위해 단행한 전략적 '빅배스(Big Bath·부실 요소를 한 번에 털어내는 것)'로 해석하고 있다.

   
▲ LG 광화문 빌딩./사진=LG생활건강 제공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2025년 4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4728억 원, 영업손실 727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연간 실적 역시 매출 6조3555억 원, 영업이익 1707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7%, 62.8% 줄어들며 외형과 수익성이 모두 축소됐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는 뼈아프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의도된 후퇴'에 가깝다. 이번 적자의 주원인은 영업 경쟁력 악화가 아닌 미래를 위한 비용 지출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실적 부진의 배경으로 희망퇴직 등 국내외 인력 효율화에 따른 대규모 일회성 비용 반영, 브랜드 건전성 제고를 위한 면세점 물량 조정 등 고강도 유통채널 재정비를 꼽았다.

이는 과거 LG생활건강의 실적을 지탱해 온 '중국 보따리상(따이공)' 위주의 면세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비대해진 조직을 슬림화하기 위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단행한 과감한 수술이다.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건전한 사업 구조를 만들겠다는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이 4분기에 잠재적 부실 요소를 모두 털어내면서 회계적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며 "비용 구조가 가벼워진 만큼, 올해 북미 시장 확대와 온라인 채널 성장이 본격화된다면 뚜렷한 '상저하고'의 실적 개선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체질 개선의 성과는 해외 사업 포트폴리오의 변화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다.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고, 그 빈자리를 거대 시장인 북미와 일본이 채우는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

실제로 4분기 중국 매출은 전년 동기 기저 부담 등으로 16.6% 급감하며 여전한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시장은 달랐다. '닥터그루트', '유시몰' 등 전략 브랜드를 앞세운 미국 매출은 7.9% 성장했고, 일본 매출 역시 6.0% 늘어나며 확실한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미국과 일본 지역이 실적을 견인하며 전체 해외 매출은 1.2% 증가, 글로벌 사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사업 부문별로는 희비가 엇갈렸다. 주력인 뷰티 사업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0% 급감한 5663억 원에 그쳤고, 영업이익도 814억 원의 손실을 내며 직격탄을 맞았다. 면세 물량 조정과 희망퇴직 비용이 집중된 탓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뚜렷하다. '더페이스샵', 'VDL' 등 해외 전략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더후', 'LG프라엘' 등 주요 브랜드의 신제품 출시로 시장 입지를 다시 다지고 있다.

HDB(생활용품) 사업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4분기 매출은 523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다. 닥터그루트와 유시몰을 중심으로 북미·일본 등 해외 오프라인 판로를 적극적으로 확장한 것이 주효했다. 마케팅 확대와 인력 효율화 비용으로 영업이익은 5.5% 감소했으나, 연간 기준으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8%, 3.1% 성장하며 전사 실적의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음료 사업은 4분기 매출이 6.7% 줄어든 3835억 원을 기록했고 영업손실 99억 원을 기록했다. '코카콜라 제로', '몬스터에너지' 등 탄산음료 브랜드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내수 경기 불황에 계절적 비수기가 겹치고 인력 효율화 비용이 발생하면서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구조조정을 마친 LG생활건강은 2026년을 실적 반등의 원년으로 삼고 다시 뛴다는 목표다.

이선주 사장은 올해 경영 목표를 '과학에 기반한 뷰티·건강 기업'로 선포하고, 외형 불리기보다는 내실 있는 '한 자릿수 매출 성장'을 다짐했다. 이를 위해 과거 오프라인과 면세점에 집중됐던 역량을 고성장 채널인 디지털 커머스,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육성으로 대거 이동시킬 방침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고성장 채널과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브랜드를 집중 육성해 성장 기반을 확보할 것"이라며 "디지털 마케팅 전략을 고도화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