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빅배스' 통했다…재고 처리 희비
테슬라 효과에 '활짝'…GM 감산에 '울상'
리튬 가격 공포 끝났다…올해는 '물량 전쟁' 돌입
[미디어펜=김동하 기자]지난해 리튬 가격 급락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라는 이중고를 겪은 국내 배터리 소재 3사(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포스코퓨처엠)의 4분기 성적표가 공개됐다. 업황 둔화라는 공통된 악재 속에서도 3사의 실적 그래프가 각기 다른 방향을 나타냈다. 업계에서는 이번 실적 격차를 단순한 '고객사 효과'를 넘어, 각 사의 재고 관리 역량과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조적 차이가 드러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 배터리 소재 3사의 지난해 실적 격차가 재고 관리 역량과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조적 차이가 드러난 결과로 해석된다. 사진은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전경./사진=에코프로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엘앤에프는 지난해 4분기 별도 기준 영업이익 824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의 예상을 깨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1500억 원대 영업손실을 냈지만 분기 기준 뚜렷한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며 기초 체력을 입증했다.

반면 포스코퓨처엠의 성적표는 복합적이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328억 원을 기록하며 표면적으로는 흑자를 지켜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본업의 방어일 뿐 '신사업의 성과'로 보기 어려웠다. 내화물 등을 생산하는 기초소재 사업이 697억 원의 이익을 내며 버팀목이 됐지만, 에너지소재(양극재·음극재) 부문은 연간 36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4분기에만 에너지소재에서 5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며 부진했다. 

에코프로비엠은 연간 영업이익 1428억 원을 기록하며 '대장주'의 저력을 보였다. 전년 대비 이익 규모는 줄었지만, 불황 속에서도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회사 측이 강도 높게 추진한 유휴 자산 매각과 공정 효율화 등 '마른 수건 짜기' 식 비용 절감 노력이 수익성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실적 희비는 단순한 판매 물량 차이보다는 ‘재고평가손실’의 회계 처리 시점 차이에서 비롯됐다.

엘앤에프가 4분기에 깜짝 실적을 낸 배경에는 상반기에 단행한 공격적인 재고 조정이 있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상반기 비싸게 매입한 리튬 재고에 대한 평가 손실을 선제적으로 대거 반영하는 '빅배스'를 단행했다. 덕분에 4분기에는 원가 부담이 정상화된 상태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이익률 개선으로 이어졌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리튬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면서 기존에 쌓아둔 충당금이 이익으로 환입되는 효과를 봤다. 반면 포스코퓨처엠은 상대적으로 고가 원재료 투입 시차가 길어지며 4분기까지도 재고평가손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고객사 포트폴리오 역시 실적 희비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꼽힌다. 엘앤에프는 테슬라가 주도하는 신규 폼팩터인 '46파이(지름 46mm) 원통형 배터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여기에 들어가는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는 니켈 함량 90% 이상의 하이엔드 제품으로 마진율이 높다. 테슬라의 인도량 호조와 신제품 효과가 맞물려 가동률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은 것이다.

에코프로비엠 또한 삼성SDI와의 견고한 파트너십이 빛을 발했다. 프리미엄 전기차에 탑재되는 고부가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 수요가 꾸준히 유지되면서, 경쟁사들이 겪은 급격한 가동률 저하를 피할 수 있었다.

반면 포스코퓨처엠은 GM(제너럴모터스) 합작사 얼티엄셀즈의 가동률 하락에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더해 '아픈 손가락'인 음극재 사업의 부진이 뼈아팠다. 중국 기업들이 저가 흑연을 앞세워 글로벌 음극재 시장을 장악하면서, 포스코퓨처엠의 음극재 공장 가동률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양극재 사업만 영위하는 경쟁사들이 겪지 않는 포스코퓨처엠만의 구조적 부담이다.

업계는 올해를 기점으로 소재사들의 실적 결정 변수가 '가격'에서 '물량'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리튬 가격이 kg당 10~11달러 선에서 바닥을 다지며 변동성이 줄어든 만큼, 이제는 판매량 확대가 실적 개선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 사는 제품 다변화와 밸류체인 내재화로 승부수를 던진다는 방침이다. 엘앤에프와 에코프로비엠은 그간 주력해온 하이니켈 외에 미드니켈(고전압) 및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양산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 둔화를 보급형 볼륨 모델로 상쇄하겠다는 '투트랙 전략'이다.

포스코퓨처엠은 하반기 반등을 노린다. 핵심 카드는 그룹 차원의 '리튬 내재화'다. 올해부터 포스코홀딩스로부터 리튬을 직접 조달받게 되면 외부 구매 대비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GM의 신차 출시가 집중된 하반기 실적 개선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가 원자재 가격 급락에 따른 생존기였다면 올해는 정상화된 마진 구조 위에서 테슬라,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의 생산 스케줄에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중국산 소재 배제(FEOC) 등 지정학적 이슈 속에서 북미 시장 점유율을 선점하는 기업이 실적 반등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