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렬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지귀연 재판부가 언급한 영국왕 찰스 1세는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해산했다가 1649년 도끼날에 목숨을 잃었다. 재판과정에서 찰스 1세는 “국왕은 지상의 어떤 법으로도 심판할 수 없다”며 재판 자체를 부정했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내란 우두머리’로 단죄된 내란 주범들의 논리와 판박이다. 내란범들은 재판내내“통치 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미 400여 년 전 사멸된 왕권신수설과 다름없는 주장으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단호했다. 국왕이든 대통령이든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행위는 '통치'가 아닌 '내란 범죄'임을 선언했다. 찰스 1세의 목을 친 도끼날이 ‘왕도 법 아래에 있다’는 국민주권의 선언이었다면 이번 유죄 판결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어떤 권력자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평범하지만 불변하는 헌법정신을 각인시켰다.
찰스 1세 곁에는 왕실의 특권을 공유하던 부패한 귀족 세력이 있었다. 우리 사회 역시 특정 연고와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특권 카르텔’이 국가 시스템을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오용해 왔음을 이번 내란재판 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내란죄 유죄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권력을 사유화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려 했던 강고한 ‘특권의 성벽’을 허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영국 의회가 찰스 1세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을 때, 비로소 영국민은 왕의 처분만 기다리던 ‘신민(臣民)’에서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시민(市民)이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민 또한 이 재판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투표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일탈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심판하는 ’깨어있는 주권자‘의 의지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학습했다.
이제 내란으로 파생된 파국적 분열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고 자양분 삼아 새로운 민주 체제를 완성해야 한다. 오늘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스템의 부재를 실감했다.
찰스 1세의 처형 이후 영국이 지구상에 없던 공화정의 길을 모색했듯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작이 돼야 한다. 권력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될 때 국가 체제가 어이없이 와해되는 과정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내란관련 여러 재판이 확인했듯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시민들이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제 우리는 갈등과 증오의 언어가 아닌 그 어떤 권력자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시민 주권의 견고한 체제‘를 세워야 한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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