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원 사망 사고, 제조사 테슬라 결함 책임 엄중 판결
자율주행 시대 빈칸…제조사·운전자 간 책임 경계 모호
[미디어펜=김연지 기자]자율주행 차량이 국내 도로 주행을 시작하며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지만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릴 법적 기준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기술 확산 속도에 비해 제도 정비가 뒤처지면서 제조사와 운전자 간 책임 공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최근 미국 법원이 테슬라의 주행 보조 시스템 결함과 관련한 사망 사고에 대해 제조사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국내에서도 사고 대응 체계와 법적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조건부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량 판매가 확대되고 있으며,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고도화된 주행 보조 시스템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사진=연합뉴스 제공

◆ 미국 법원, 테슬라에 3500억 원 배상 판결…제조사 책임 확대 흐름

미국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테슬라의 주행 보조 시스템 '오토파일럿'과 관련한 사망 사고에 대해 테슬라가 2억4300만 달러(약 3511억 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운전자의 전방 주시 태만을 주된 원인으로 본 테슬라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스템이 장애물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기술적 한계와 '오토파일럿'이라는 명칭이 소비자에게 과도한 신뢰를 형성한 점을 배상 책임의 근거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한 사고에서 제조사의 설계 결함과 표시·설명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글로벌 자율주행 산업의 책임 소재 규명에 있어 중대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법원이 시스템의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한 관리 의무를 제조사에 부과함에 따라 향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대한 안전 입증 책임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 기술이 단순 보조 기능을 넘어 운전의 일부를 대체하는 단계로 진입하면서 법적 리스크의 중심 역시 점차 기술 공급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 제도적 사각지대 지적…사고 데이터·책임 기준 정립 과제

최근 국내 시장에는 테슬라의 FSD와 GM의 슈퍼크루즈 등 고도화된 운전자보조시스템을 적용한 차량이 판매되고 있다. 다만 이들 기능은 제조사 기준상 레벨2에 해당하며 운전자 감독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완전 자율주행과는 구분된다.

레벨2 단계에서는 조향과 가감속을 시스템이 수행하더라도 전방 주시와 최종 판단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반면 레벨3는 일정 조건에서 시스템이 돌발 상황 인지와 대응까지 담당하는 단계로 법적 책임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 FSD와 슈퍼크루즈는 미국에서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레벨2로 분류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레벨2 기능으로 유통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레벨3로 상향될 경우 사고 시 제조사 책임 범위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레벨2 지위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기능이 활성화되는 구조 속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별도 국내 인증 절차 없이 도입되는 점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테슬라 FSD 국내 상륙과 우리나라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제도적 사각지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박용선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장은 "테슬라 FSD가 별도 검증 없이 수용된 점은 국민 안전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연계한 모니터링 강화를 예고했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데이터 접근권 확보 역시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사고 당시 소프트웨어 판단 기록과 센서 작동 데이터가 제조사에 집중돼 있어 피해자가 시스템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토론회 참석 전문가들은 사고기록장치(EDR) 항목 표준화와 함께, 제조사가 보유한 주행 데이터를 공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조사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2027년 레벨4 상용화를 목표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춘 책임 기준과 보험 체계 정비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시장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의 경쟁력 확보와 함께 책임 윤리와 데이터 관리 원칙을 포함한 법적 안전망 구축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변수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 확보도 중요하지만, 책임 구조와 데이터 관리 원칙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으면 소비자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제조사와 운전자 간 책임 균형을 반영한 제도 설계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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