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배소현 기자] 정부가 구글의 1대5000 축척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사실상 허용한 가운데, 결정 과정과 국내 산업계에 미칠 파급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보안 조치를 전제로 한 조건부 허가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핵심 쟁점에 대한 논의 없이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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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AI 이미지 |
5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통해 구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영상 보안 처리와 좌표 표시 제한, 국내 서버 활용 등 보안 조건을 전제로 한 결정이지만 세금 문제와 국내 산업 파급 효과, 의사결정 과정 등 핵심 사안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조건이 사실상 완화되면서 구글의 조세 회피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으며, 지도 반출이 국내 공간정보 산업에 미칠 장기적 영향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협의체 구성과 회의 진행 과정에서도 민간위원 사퇴와 긴급 위촉 등이 이어지며 졸속 결정 논란까지 불거졌다.
◆ 세금 논의 빠진 지도 반출… 데이터센터 조건 완화로 구글 '조세 회피' 우려
이번 결정에서 가장 큰 논란은 구글의 조세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고정밀 지도 반출의 핵심 전제 조건으로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를 요구해 왔지만, 최종 결정에서는 국내 제휴 기업이 보유한 서버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조건이 완화됐다.
이에 따라 구글이 국내에 고정 사업장을 두지 않은 채 지도 서비스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구글이 국내에서 10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의 매출을 해외로 이전하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법인세는 100억 원대 수준만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기록한 네이버가 낸 법인세 3902억 원(2024년 기준)의 4% 수준에 불과하다.
당초 정부 조건대로 데이터센터가 국내에 설치될 경우에는 고정 사업장으로 간주돼 국내 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과세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번 결정으로 이러한 장치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조세 회피 가능성 문제는 별도로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데이터센터 설치 조건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국내에서 기존 업체들과 동등한 수준의 지도 관련 서비스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조세 부담은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 "10년 간 최대 197조원 손실" 전망도… 산업 파급 효과 논의 빠져
지도 반출이 국내 공간정보 산업에 미칠 경제적 파급 효과 역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학계에서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해외 기업으로 이전될 경우 플랫폼·모빌리티·건설 등 연관 산업 전반에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거듭 제시되고 있다.
정진도 한국교원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지도 반출이 허용될 경우 향후 10년 간 공간정보 관련 산업에서 최소 150조 원에서 최대 197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해외로 유출되는 로열티 규모도 최대 1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적 영향에 대한 분석이나 정책적 대응 논의는 이번 협의체 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체 역시 공간정보 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산업 육성 및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지만,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서도 한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피지컬AI 등 국내 공간정보 관련 산업 전체가 거대 자본을 갖춘 해외 업체에 잠식돼 산업 생태계가 훼손되고 미래 성장 동력마저 꺾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민간위원 사퇴 뒤 긴급 위촉… 협의체 회의 '절차 논란'
협의체 운영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다.
협의체에 참여해온 한 민간 전문위원은 이번 회의 개최 직전 정부가 구글과의 협의 내용 등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채 회의를 강행하려 한다며 항의 차원에서 위원직을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해당 협의체는 최소 1명 이상의 민간위원을 포함해야 하는데, 이 위원이 사퇴하면서 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이틀 만에 다른 민간위원 2명을 새로 위촉해 회의를 개최했지만, 업계에서는 "회의 요건을 맞추기 위한 형식적 조치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위원들은 전문성 가지고 위촉한 분들이며 이번 사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서 참석하신 걸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위원 위촉 이후 실제 검토에 주어진 시간이 이틀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숙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구글이 서비스·국내 업체가 가공' 2중 구조… 책임 소재 논란도
이 밖에도 구글이 서비스 운영을 맡고 국내 제휴 업체가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는 '이중 구조' 역시 새로운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국내 제휴 기업의 서버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가공과 보안 조치를 수행하도록 조건을 달았지만, 정작 해당 제휴 업체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업계 취재 결과 국내 주요 지도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 티맵모빌리티 등은 정부나 구글로부터 관련 협력 제안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국내 지도 데이터 가공을 맡을 수 있는 인프라와 경험을 갖춘 기업들이 협력 논의 대상에조차 포함되지 않았다면, 결국 더 규모가 작은 업체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대규모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관리·가공할 기술적 역량과 보안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한국 내 법인을 통해 해당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을 '국내 제휴 기업' 형태로 제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 경우 사실상 구글 계열사가 데이터를 가공하는 구조가 되는 만큼, 정부가 강조해 온 '국내 기업을 통한 관리·감독'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작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국내 제휴 기업이 어디인지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리·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느냐"면서 "만약 구글 한국 법인이 해당 역할을 맡는 구조라면 결국 '국내 제휴'라는 표현 자체가 형식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절차적 정당성과 책임 구조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가져올 장기적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한 번 해외로 나가면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전략 자산"이라며 "조세 문제와 산업 파급 효과, 의사결정 절차까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용된 이번 결정이 결국 국내 공간정보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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