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자금 지원 넘어선 빅픽처…'전기 먹는 하마' AI 데이터센터
EV 캐즘 넘을 비전기차 턴어라운드…배터리 제조사 한계 돌파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난…차세대 액침냉각 등 핵심 기술 내재화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통합 SK이노베이션이 출범한 지 1년여가 지난 가운데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고강도 사업 구조조정이 재무 수혈을 넘어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인프라 장악을 위한 승부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EV) 캐즘을 뚫어내기 위해 SK온이 배터리 제조사를 넘어 전력망과 열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턴어라운드 채비를 마쳤다는 분석이다.

   
▲ 1년여 간 고강도 리밸런싱을 마친 SK온이 전력 생산부터 대용량 저장(ESS), 서버 열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의 턴어라운드 채비를 마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SK온 인터배터리 2026 전시관 내 액침냉각 팩 모형./사진=SK온 제


9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24년 11월 SK E&S와의 모회사 합병과 동시에 자회사 SK온에 알짜 계열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합병시켰다. 이어 지난해 2월 SK엔텀, 같은 해 11월에는 연간 1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윤활유 전문 기업 SK엔무브까지 순차적으로 전격 흡수합병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시장은 장기간 이어진 이 꼬리물기식 합병을 두고, 자본 잠식 위기에 처한 SK온의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적격상장(Q-IPO) 지연에 따른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압박을 방어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고육지책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고강도 리밸런싱이 마무리된 지금 밸류체인 통합의 시너지는 전기차가 아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전세계적으로 지어지고 있는 AI 데이터센터는 이른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기관들은 2026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2년 대비 2배 이상 폭증해 1000TWh(테라와트시)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막대한 연산 처리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전력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서버가 뿜어내는 열을 식히는 과정이 데이터센터 유지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치명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여기서 SK온과 통합 SK이노베이션, 흡수합병 자회사들의 밸류체인 시너지가 발휘된다. 먼저 합병 후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재편된 SK이노베이션 E&S의 액화천연가스(LNG) 및 신재생 에너지 발전 역량이다. 이를 통해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중단 없이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전력망 기반을 깔았다.

생산된 대규모 전력을 데이터센터의 수요에 맞춰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분배하는 역할은 SK온의 배터리 기술력을 활용한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맡는다. 피크 타임에 전력망의 부하를 줄이고 잉여 전력을 담아두는 대규모 ESS는 데이터센터의 필수 생존 설비다. SK온은 최근 북미 시장에서의 대규모 공급 계약과 더불어 정부의 장주기 배터리(BESS) 입찰 물량 절반 이상을 확보하며 이 비전기차 부문의 확고한 경쟁력을 시장에 입증하고 있다.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한 뒤 남는 문제는 데이터센터 열관리다. 지난해 11월 SK온에 합병된 SK엔무브의 진가가 여기서 나온다. SK엔무브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냉각유에 서버를 통째로 담가 열을 식히는 차세대 액침냉각(Immersion Cooling)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선점했다. 공기로 열을 식히는 기존 공랭식 대비 전력 소비를 30% 이상 줄일 수 있어 AI 데이터센터의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실제로 이 시장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 등에 따르면 글로벌 액침냉각 시장은 2022년 2억4400만 달러(약 3300억 원) 수준에서 오는 2030년 17억1000만 달러(약 2조3000억 원) 규모로 연평균 24%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데이터센터의 고도화로 전력 소모가 극심해지면서 기존 공랭식의 한계가 뚜렷해졌고, 특수 유체를 활용한 액침냉각은 단순한 대안을 넘어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SK온은 1년이 넘는 리밸런싱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납품이라는 단일 포트폴리오 약점을 지워낸 셈이다. 그룹 내 흩어져 있던 역량을 모아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대용량으로 저장 및 관리하며 서버의 열까지 통제하는 토탈 에너지 솔루션 생태계를 완성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과거 SK온의 잇따른 합병 행보가 전기차 캐즘을 버티기 위한 모회사의 재무적 선택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AI라는 거대한 메가 트렌드에 올라타기 위해 설계하고 있었던 셈"이라며 "수율 안정화와 더불어 전력 통합 솔루션을 쥐게 된 SK온이 향후 캐즘 이후의 시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턴어라운드를 증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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