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경 투런홈런 포함 3안타 4타점 활약
[미디어펜=석명 기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한국이 호주를 상대로 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한다고 했다. 7-2, 5점 차로 이겼다. 이기더라도 2실점 이하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2점만 내주고 이겼다. 그렇게 한국 야구대표팀은 미국 마이애미행 전세기에 오르는 기적을 썼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조별리그 A조 최종 4차전에서 호주를 7-2로 꺾었다.

   
▲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호주를 7-2로 꺾고 극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선수단이 도쿄돔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BO 공식 SNS


한국은 2승 2패가 돼 호주, 대만과 동률을 이뤘다. 3연승한 일본이 10일 체코전 결과와 상관없이 A조 1위를 확정지은 상태. 나머지 한 장의 8강행 티켓이 걸린 조 2위를 두고 동률을 이룬 세 팀의 실점률을 따져 순위를 가렸다. 한국이 걸국 최소 실점률로 조 2위를 차지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이 '2실점 이하, 5점 차 이상 승리'라는 희박했던 확률을 뚫어낸 것이다. 

최근 WBC 3개 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한국은 2009년 이후 17년 만에 8강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이제 한국 대표팀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동, 오는 14일 오전 7시 30분(한국시간) D조 1위와 8강전을 치른다. D조 조별리그는 현재 진행 중인데, 강호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가 나란히 2승을 올리고 있다.

한국은 이날 김도영(KIA 타이거즈·3루수)-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좌익수)-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중견수)-안현민(KT 위즈·우익수)-문보경(LG 트윈스·지명타자)-노시환(한화 이글스·1루수)-김주원(NC 다이노스·유격수)-박동원(LG·포수)-신민재(LG·2루수)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그동안 선발로 나서왔던 셰이 위트컴(휴스턴 애스트로스)과 김혜성(LA 다저스)이 빠지고, 노시환과 신민재가 선발로 기용됐다.

선발 투수는 손주영(LG)이 맡았다.

경기 내용과 진행 상황은 야구팬들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이 넘쳤다.

   
▲ 선제 투런홈런을 날린 문보경이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사진=KBO 공식 SNS


다득점을 노린 한국이 2회초 먼저 점수를 뽑았다. .선두타자 안현민이 2루타를 치고 나가자 문보경이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선제 투런홈런을 터뜨렸다. 체코전에서 만루포를 날리는 등 이번 대회 한국 타자들 가운데 최고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는 문보경이 다시 공격의 선봉에 서 2-0 리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 마운드에 변수가 생겼다. 1회말 투구를 마친 선발 손주영이 2회말을 앞두고 팔꿈치 통증으로 더 던질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표팀 맏형 노경은(SSG 랜더스)이 급히 마운드를 물려받았다. 노경은은 몸도 제대로 풀지 못했지만 2회말을 잘 막았고, 3회초 공격에서 한국이 추가점을 냈다.

2루타 3방으로만 2점을 뽑아냈다. 저마이 존스, 이정후, 문보경이 좌중간으로 우중간으로 타구를 날려보내며 줄줄이 2루타를 때려 4-0으로 달아났다.

   
▲ 3회초 적시 2루타로 타점을 올린 이정후가 '비행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WBC 공식 SNS


노경은은 3회말에도 등판해 또 1이닝을 깔끔하게 지우며 2이닝 호투를 하고 소형준(KT)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4회초를 그냥 보낸 한국은 5회초 한 점을 보탰다. 2사 후 안현민이 볼넷으로 출루한 후 2루 도루까지 성공했다. 여기서 문보경이 또 해결사로 나섰다. 좌측 담장 상단을 때리는 큼지막한 적시타를 때려 안현민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5-0이 됐다. 이 점수만 그대로 지키면 한국이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점을 피하지 못했다. 4회말 등판했던 소형준이 5회말 선두타자 로비 글렌디닝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다시 5-1, 4점 차로 좁혀지면서 한국에는 추가 득점이 필요해졌다.

6회초 한국이 바로 점수를 뽑았다. 1사 후 박동원이 좌측 담장 상단 맞고 떨어지는 2루타를 치고 나갔다. 신민재가 3루수 직선타로 물러난 후 상대 폭투로 2사 3루가 되자 김도영이 깔끔한 우전 적시타를 쳐 스코어 6-1을 만들었다. 이대로 끝나도 한국의 8강 확정이었다.

지키는 야구에 돌입한 한국은 믿을 만한 투수들을 줄줄이 투입했다. 6회말은 박영현(KT), 7회말은 데인 더닝(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 책임졌다. 둘 모두 주자를 내보내 위기는 있었지만 실점하지 않고 버텨줬다.

그러나 8회말 등판한 김택연(두산 베어스)이 아쉽게 실점했다. 선두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보내기 번트로 1사 2루가 된 다음 트래비스 바자나를 상대로 제구가 안돼 가운데로 몰린 공을 던져 좌전 적시타를 맞았다. 6-2로 점수 차가 좁혀졌고, 한국은 또 점수가 필요해졌다.

한국은 9회초 마지막 공격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너무나 극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선두타자 김도영이 볼넷을 얻어 기회를 열고 대주자 박해민(LG)과 교체됐다. 저마이 존스가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나 1아웃. 이어 이정후가 친 땅볼이 투수 글러브 맞고 굴절되며 유격수 쪽으로 향했다. 이 볼을 잡은 유격수 제러드 데일이 서둘러 2루로 송구한 볼이 악송구가 되면서 뒤로 빠졌다. 그 사이 박해민은 3루까지 내달려 1사 1, 3루 기회기 엮어졌다.

안현민이 중견수 쪽 희생플라이를 날려보내 박해민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7-2, 다시 격차를 5점 차로 벌렸다.

   
▲ 호주를 7-2로 꺾고 극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 선수들이 격하게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KBO 공식 SNS


이제 9회말만 실점 없이 막으면 됐다. 8회말 1사 후 김택연을 구원 등판해 이닝을 마무리했던 조병현(SSG)이 9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조병현은 1사 후 볼넷 하나를 내줬으나 연속 범타 처리하며 한국 야구의 기적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보경은 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으로 펄펄 날며 한국의 8강행에 주역이 됐다. 투수진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각각 2이닝 무실점, 1⅔이닝 무실점으로 5점 차 승리를 뒷받침한 베테랑 노경은, 영건 조병현  SSG 듀오의 활약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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