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이 일군 낭만에 기득권 노조 '위선'만 남아
연봉 상위 1%가 '미래 세대' 기회 잠식하는 역설
   
▲ 조우현 기자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아무것도 하기 싫고 나태해질 때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이봐, 해봤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남긴 이 질문은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정 회장의 일화를 엿볼 때면 묘한 낭만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투박했던 시절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주며 차관을 빌려오고, 거친 바닷물을 폐유조선으로 막은 기개는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아마도 그건 득실을 따지고 치밀한 계산을 했다기 보다, 안 된다는 편견에 맞서 기업을 성장시키고 나라를 살리겠다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투박한 진심은 정 회장이 일군 '현대'라는 기업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가 딛고 선 근간이 됐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한민국의 서사에 그의 이름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3월 21일은 정주영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날이다. 아쉬운 것은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가 닦아놓은 번영의 터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소득 상위 1%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고도 '부족하니 더 달라'는 태도를 보이는 노동조합 이야기다. 강성노조로 위상을 떨치는 현대차 노조가 신생인 삼성전자 노조를 향해 "투쟁력이 약하다"고 조언하는 기막힌 일화까지 오간다. 정 회장이 일궈낸 결실 위에 그야말로 '귀족'이 돼버린 노조의 역설이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021년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사진전'에 방문해 아산의 사진과 영상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물론 노조의 행보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모두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됐던 시절, 노조의 헌신이 오늘날 개선된 근무 여건을 만드는 데 일조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명확한 전제가 있다. 이 모든 결실은 결국 기업과 국가의 성장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도전을 뒷받침한 자유시장경제라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오늘날 상위 1%의 처우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토대가 된 자유시장경제의 강점은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보장하는 역동성에 있다. 냉정하게 말해, 대기업 노조야말로 그 시스템이 배출한 최대의 수혜자다. 치열한 취업 전선에서 승리했다면, 회사를 악마화하며 불만을 품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의 경로가 돼주는 것이 마땅하다. 누군가의 도전을 통해 얻은 풍요라면, 그 기회의 통로를 다음 세대에게도 열어두는 것이 승자의 도리다. 하지만 제 몫을 챙기기 위해 기업의 활력을 갉아먹는 사이, 미래 세대가 비집고 들어갈 성장의 영토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모든 이가 정주영 회장이 남긴 거대한 낭만을 품고 살 수 없다. 모두에게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그저 저마다의 소질을 갈고닦아 제 몫의 '1인분'을 해내며 살면 그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기업 노조가 과연 그 '1인분'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 영민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그것이 정당한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상식의 영역 아니겠는가.

그래서 25주기를 맞는 아산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래서 더 아프게 들린다.
“이봐, 진짜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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