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확전 우려에 호르무즈 위기 고조…미·호주 LNG로 도입선 다변화
육상 터미널 대안으로 즉각 투입 가능한 '바다 위 터미널' FSRU 부상
2029년까지 도크 채운 조선 3사, 고부가가치 선종 중심 '선별 수주' 가속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 지역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천연가스 밸류체인의 재편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새로운 가스를 수입하기 위한 부유식 저장·재기화 장치(FSRU)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한정된 건조 공간(도크)을 바탕으로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에 나서며 영업이익률 확대를 꾀할 전망이다.

   
▲ 중동 군사적 충돌 장기화로 글로벌 천연가스 밸류체인 재편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부유식 저장·재기화 장치(FSRU)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한정된 도크를 바탕으로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를 통해 이익률 확대를 꾀할 전망이다.사진은 HD현대 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 제공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란 전쟁의 확전 양상으로 중동발 에너지 수급의 불확실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가스 트레이더와 수입국들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호주와 미국 등 서방 진영으로 LNG 조달처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카타르산 LNG의 주요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가스 수요가 미국과 호주산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관측된다.

호주 파이낸셜리뷰(AFR)의 최근 보도와 미국 경제 지표 등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에너지 수입국들은 기존 중동발 장기 공급 계약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산 및 호주산 현물(Spot) 가스 확보에 나서며 글로벌 천연가스 조달망의 무게 중심이 다소 이동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글로벌 조달망 다변화 과정에서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것은 가스를 수용할 수입국 현지의 하역 및 재기화 인프라 확충이다. 기존 파이프라인(PNG)이나 특정 항구 물류망에 의존하던 국가들이 새로운 해상 경로로 유입되는 대규모 액화 가스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설비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대규모 해안 부지 확보, 환경 영향 평가,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을 거쳐 육상 LNG 터미널을 완공하는 데는 통상 4~5년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당장의 지정학적 에너지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따르는 상황이다.

그 대안으로 선박 형태의 특수 해상 설비인 부유식 저장·재기화 설비(FSRU)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FSRU는 해상에 계류하며 LNG 운반선으로부터 가스를 넘겨 받아 이를 기화한 뒤, 해저 파이프를 통해 육상 가스망에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건조 직후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투입이 가능한 '이동식 바다 위 터미널'로 기능하기 때문에, 육상 인프라 구축에 소요되는 시간적 한계를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또한, 향후 지정학적 위기가 완화되거나 특정 지역의 가스 수요가 변동될 경우 다른 해역으로 이동시켜 재배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주처의 자산 운용 유연성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FSRU를 적기에 건조해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조선 인프라는 비교적 한정적인 상태다. 고도의 해양 플랜트 엔지니어링 역량과 극저온 화물창, 특수 재기화 모듈 탑재 기술이 요구되는 FSRU 분야는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시장 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 조선 3사는 지난 수년 간 이어진 친환경 선박 및 LNG 운반선 발주 호조로 인해 오는 2029년경까지 주력 도크를 상당 부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건조 여력이 제한적인 조선사들이 설비 확보가 시급해진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와 수입국들을 상대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하게 된 구조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러한 시장 환경을 바탕으로 수익성 제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범용 상선 수주 비중을 조절하고, 향후 남은 도크 슬롯을 척당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는 FSRU 등 고부가가치 특수 선종에 배정하는 방안을 실행 중이다. 자체 엔진기계 사업부와의 밸류체인 연계를 통해 고효율 재기화 시스템을 탑재한 모델을 제안하며 건조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방산 및 에너지 계열사와의 기술 시너지를 활용해 유럽 및 아시아의 가스 수입국들과 다각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한 선박 건조를 넘어 향후 유지보수와 운영을 아우르는 장기 계약을 타진하며, 공급 능력이 희소해진 현 상황을 통해 전체 프로젝트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중공업은 자사가 보유한 해양플랜트 표준화 모델 역량과 독자적인 액화·재기화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수주전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변동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키는 등 FSRU 수주의 상업적 이익률을 개선하는 데 전사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가스 수급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발주처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의 비용 부담을 감안하더라도 안정적이고 검증된 건조 역량을 갖춘 삼성중공업의 조건을 수용할 여지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 우려로 촉발된 가스 물류망 재편 움직임은 수입국들에게 시급한 인프라 확보 과제를 안겨주었지만, 이미 넉넉한 수주 잔고를 확보한 국내 조선사들에게는 수익성을 한층 높일 수 있는 주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며 "당분간 관련 건조 문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조선업계는 고수익 선별 수주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질적 성장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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