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물가 압력 미 연준 연내 금리인하 1회 축소…고금리 장기화 불가피
할부 금리 인하 따른 전기차 수요 반등 기대감 무산…시장 회복 모멘텀 증
배터리 3사, JV 변경 등 속도 조절 속 EV 라인 ESS 전환 포트폴리오 다변화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오일쇼크' 여파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 전기차 수요 반등의 유일한 희망이던 '할부 금리 인하' 모멘텀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배터리 3사는 합작공장(JV) 투자를 늦추고 기존 라인을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전환하는 등 상황에 맞춘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합작사인 얼티엄셀즈 오하이오공장 전경./사진=얼티엄셀즈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이 상대국의 핵심 에너지 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양상으로 군사 충돌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유가 변동성이 극도로 커졌다. 국제 유가 상승은 점차 둔화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다시 강하게 자극했다. 실제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2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에너지 도매가격 반등(2.3%) 등에 힘입어 전월 대비 0.7% 급등했다. 이는 7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물가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자 미국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올해 금리 인하 횟수 전망을 단 1회로 대폭 축소했다. 중동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위기와 맞물린 인플레이션 위험을 고려할 때, 당분간 고금리 기조를 지속해야 한다는 연준의 판단이 확고해졌다. 사실상 시장이 연내 기대했던 조기 금리 인하 사이클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이러한 거시경제 지표 악화는 일시적 수요 정체(캐즘) 장기화로 고전 중인 배터리 밸류체인에 악재로 작용한다. 내연기관차 대비 가격이 비싼 전기차는 소비자의 오토론(자동차 할부 금융) 의존도가 매우 높은 대표적인 금리 민감 소비재다. 

업계는 올 하반기 연준의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할부 이자 부담이 줄어 전기차 판매가 다시 극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오일쇼크발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시장 회복 기대감이 사라진 셈이다. 전기차 시장의 자생적인 수요 회복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반등 기대감이 꺾이자 국내 배터리 3사는 무리한 외형 확장을 멈추고 현금 흐름을 사수하는 비상 경영 체제를 굳혔다. 수요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맹목적인 생산능력(CAPA) 증설은 대규모 고정비와 재고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미시간주에 짓고 있는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3공장의 완공 및 양산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늦추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출자 일정도 보수적으로 재조정하며 자본 지출을 통제하고 있다. 동시에 가동률이 떨어진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 등의 기존 전기차 생산 라인을 최근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는 ESS용으로 적극 전환 중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북미 전력망 수요를 공략해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구상이다.

SK온 역시 포드와의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가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신설 중인 대규모 공장의 상업 가동 시점을 기존 2025~2026년에서 순차적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실행에 옮겼다. 불확실한 전방 시장 상황에 맞춰 무리한 증설보다는 기존 라인의 수율 안정화와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며 재무 건전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SDI는 GM과 미국 인디애나주에 추진 중인 배터리 합작공장 가동 시점을 당초 예고했던 시기보다 1년 늦춘 2027년으로 연기했다. 이와 함께 스텔란티스와의 북미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의 전기차 라인 일부를 선제적으로 ESS용으로 바꾸는 등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불확실한 전기차 시장만 바라보기보다, 당장 현금 창출이 가능한 ESS 수주 잔고를 채워 부진을 상쇄하겠다는 전략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오일쇼크발 고금리 고착화로 인해 전기차 시장의 자생적인 수요 회복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국내 배터리 3사는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신규 증설을 멈추고 운영 중인 라인의 탄력적인 ESS 전환을 통해 캐즘 혹한기를 버틸 수익 방어막을 치는 데 전사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