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밸류업’ 기조 맞춰 자사주 처분 등 경영 판단에 잇따라 ‘반대’
경영권 방어 수단 전무한 국내 현실 외면… “기업 활력 저하 초래”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서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법적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기업들의 경영상 자사주 처분 계획에 잇따라 ‘반대’ 깃발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경영권 보호 장치가 부족한 국내 기업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서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법적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기업들의 경영상 자사주 처분 계획에 잇따라 ‘반대’ 깃발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경영권 보호 장치가 부족한 국내 기업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번 주 열리는 SK하이닉스, 현대차, 이마트 등의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된 자사주 처분 계획에 반대표를 던질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SK하이닉스는 자사주 30만 주를 임직원 보상용으로 지급하는 안건을, 현대차 역시 인재 확보를 위한 자사주 처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신세계푸드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자사주를 활용한 ‘포괄적 주식 교환’을 안건으로 올렸다.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이 자사주 취득 당시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공시했다는 점을 들어, 임직원 보상이나 자회사 편입 등은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궁극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여 주주 이익으로 환원되는 경영 활동임에도, 이를 단순히 ‘소각 회피’로 간주하는 것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지를 좁히는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회를 통과한 3차 상법 개정안은 상장사가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내, 기존 보유분은 18개월 내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적 의무에 따라 자사주 처분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획일적인 반대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행보를 ‘연기금 사회주의’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공적 기관이 정부 기조에 맞춰 민간 기업을 길들이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인사 위주로 구성된 구조적 한계가 ‘관치 금융’ 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의 장기적 생존보다는 당장의 주가 부양이라는 단기 성과와 정치적 선명성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우리나라의 경영권 방어 제도가 글로벌 기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차등의결권 같은 장치가 있어 자사주 소각이 활발하지만, 한국은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해 자사주가 사실상 적대적 M&A로부터 회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진권 전 한국재정학회 회장은 “별도의 방어 수단은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유일한 방패인 자사주마저 녹여 없애라는 것은 기업을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재계 관계자 역시 “기업마다 재무 상황과 성장 전략이 다른데 소각만을 정답으로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국민연금의 과도한 의결권 행사가 자칫 기업의 투자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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