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신원확인 인프라 없어" 법무부 "법·예산 마련해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해서 가장 먼저 겪는 문제는 은행 계좌 개설입니다.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까지 계좌 발급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은행 계좌가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어렵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는 초기 단계부터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생활 3년차를 맞이한 슬로베니아 국적의 유르스카씨.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인 그는 입국 초기 외국인이 겪어야 하는 행정·금융·통신·의료 등의 생활 필수 서비스를 본인인증 절차때문에 제때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 국내 체류 외국인이 278만명을 돌파하며 300만명 시대를 앞둔 가운데, 정작 이들을 위한 비대면 금융인증 서비스가 부재해 초기 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더라도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까지 본인인증을 거치지 못해 초기 경제생활을 어렵게 하는 까닭이다. 이를 두고 관할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신원확인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무부는 생체정보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 및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책임을 각자 떠넘기는 형국이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국내 체류 외국인 300만명 시대를 앞둔 가운데, 정작 이들을 위한 비대면 금융인증 서비스 부재로 초기 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더라도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까지 본인인증을 거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를 두고 관할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신원확인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무부는 생체정보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 및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책임을 각자 떠넘기는 형국이다. 

금융권이 금융당국의 지원에 힘입어 비대면 인증서비스를 일제히 내놓으면서, 본인인증 없는 한국생활이 어려워진 가운데, 정부 부처의 무관심으로 취약계층인 초기 정착 외국인들이 행정·금융·통신·의료 등의 생활 필수 서비스를 제때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278만명을 돌파하며 곧 300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에 국내 장기체류를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에 한정해 금융인증서비스를 열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까지 생활필수 서비스를 외국인이 누릴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같은 불만은 전날 이성윤·안도걸·이정문·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외국인 디지털 신원확인 기반 금융서비스 혁신' 토론회에서도 제기됐다.

"다중 생체인증 허가해 본인인증 길 터줘야"

전날 기조 발제를 맡은 김재홍 JB금융지주 뉴테크(NewTech) 부장은 '장기 체류 외국인·재외동포 전용 비대면계좌 개설 시범사업'을 발표하며, 장기 체류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비대면 인증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기 전 단계부터 비대명 실명확인 및 은행계좌 개설을 지원해 외국인의 정착을 돕는 포용금융을 실천하겠다는 구상이다.

   
▲ 김재홍 JB금융지주 뉴테크(NewTech) 부장은 '장기 체류 외국인·재외동포 전용 비대면계좌 개설 시범사업'을 발표하며, 장기 체류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비대면 인증을 허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이는 국내 주요 생활 인프라가 은행계좌 기반 디지털 인프라 중심으로 구축돼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 비대면 은행계좌 개설이 불가능하다. 은행 영업점 창구를 찾아야 그나마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여권이나 외국인등록 사실증명서를 제출해야 선별적으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절차의 복잡성과 더불어 언어적 장벽까지 이겨내야 하는 외국인으로선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은행 계좌 개설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은행계좌가 있어야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고, 휴대폰이 있어야 모바일 인증이 가능한 까닭이다. 결국 비대면 서비스 중심으로 성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이 살아 남으려면 은행 계좌부터 터야 하는 셈인데, 정부 부처 간 법안 부재를 이유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JB금융은 이를 위해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까지 임시 외국인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다중 생체인증(안면+지문)을 추가하는 '디지털 신원확인(KYC)' 기반 비대면 금융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입국 과정에서 이미 수집된 생체정보와의 동일성 여부만 확인하면 되는데, 현재 법무부는 국내로 입국하는 외국인을 등록할 때 지문·얼굴 등의 생체정보를 출입국관리 목적으로 수집·보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JB금융은 91일 이상 장기체류허가 외국인 및 재외동포로 이용자를 제한하고, 거래한도를 제한하는 등의 제약조건도 내걸어 범죄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했다. 법개정 없이 기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JB금융의 은행계열사인 JB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은 이달 중 관련 서비스를 금융위에 혁신금융서비스로 신청할 예정이다.  

김 부장은 "장기 체류 외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해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기까지 수주에서 최대 8주까지 걸리는 동안 대책이 없어 각종 불편을 겪고 있다"며 혁신금융서비스는 기한이 한정되므로 효과성을 검증하고 불법 사용 등이 발생하는 지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적정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을 방문하거나 장기간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사회 생활 인프라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외국인들을 위한 디지털 신원 확인 체계가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종춘 JB금융 AX미래성장본부 부사장도 "금융 접근성 문제를 풀지 못하면 생활 정착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와 외국인 인재 유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위험을 통제할 장치를 전제로 시범사업부터 시작해 제도화 가능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 "법·예산 부재" vs 금융위 "시스템 구축부터"

민간에서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 부처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각자만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법무부는 비대면 금융인증이라는 점에서 금융위가 비대면 계좌개설을 허용할 지의 여부를 선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금융위는 비대면 본인인증 과정에서 신원확인을 할 방법이 부재하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신장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외국인들은 여권으로 대면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비대면의 경우 외국인등록증이 나오기 전에 진위확인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고 반대 배경을 설명했다. 육안으로만 판별해야 하는 금융사로선 외국인 고객의 신원확인을 할 방법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어 "혁신금융서비스든 뭐가 됐든 진위확인시스템을 전제로 시작돼야 하는데, 혁신서비스로 했다가 폐기되어선 안 되지 않느냐"며 "이를 모두 감안해서 제도화하는 것을 전제로 혁신서비스로 해야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도의 보완을 요구했다. 

윤철민 법무부 이민정보과장은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겪는 금융생활의 불편이 해소돼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출입국 심사 시 수집한 외국인의 생체정보는 관리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어, 이를 인증용으로 쓰려면 법에 명확한 근거를 넣는 게 개인정보 보호 취지에 부합한다"고 했다. 

이어 "다중 생체인식은 현재 법무부가 갖고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시스템 구축과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재민 법률사무소 JM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금융위원회에 가면 법무부한테 가보라고 하고, 법무부에 가면 금융위가 주도해라는 뉘앙스로 얘기하다 보니 사실상 뺑뺑이만 돌고 있다"며 "금융기관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 이성윤·안도걸·이정문·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23일 '외국인 디지털 신원확인 기반 금융서비스 혁신'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여당 의원들 "제도 개선 힘쓸 것"

같은 날 토론회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선해결해야 할 정책과제로 꼽고, 제도 개선에 힘쓸 것임을 시사했다.

안도걸 의원은 "시스템 구축 예산은 예비비 등을 통해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며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법무부와 긴밀히 협의해 시범사업 형태로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지털 금융 인프라와 전자정부 시스템 등 기반을 활용해) 외국인까지 포용하는 디지털 신원확인 기반 금융서비스를 구축한다면 대한민국의 디지털 금융 경쟁력은 한 단 계 더 높아질 것이다"고 밝혔다. 

이정문 의원은 "금융 접근의 공백 문제는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될수록 오히려 불법 사금융이나 금융범죄에 노출될 위험을 키운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행정정보 연계, 다중 생체인증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면 외국인의 금융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금융범죄 예방과 거래 안정성도 함께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성윤 의원은 "입국 단계의 정보를 활용한 임시 외국인 식별번호 도입과 한국형 디지털 신원확인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법무부 보유 생체정보와 금융위원회 실명확인 체계의 원활한 연계 및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정 의원은 "외국인들은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 전까지 은행계좌 개설이 어려워 휴대전화 개통이나 공과금 납부 등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며 "임시 외국인 식별번호 도입, 생체정보 기반 디지털 신원확인 시스템 구축, 외국인 전용 비대면 금융서비스 시범사업 등은 외국인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금융범죄 예방과 행정 효율성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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