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서 기술집약으로…K-조선, AI·로봇 융합 밸류체인 혁신
HD현대 '2족 보행 로봇' 실증…삼성重·한화오션도 무인화 '속도'
"단순 원가 절감 아닌 생존"…중국 물량 공세 맞서 '소프트웨어'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값싼 노동력과 작업자의 숙련도에 의존해 온 노동 집약적 조선업이 인공지능(AI) 전환(AX)과 자율주행 로봇(RX), 디지털 트윈(DX)을 융합한 기술 집약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는 만성적 인력난과 중국 저가 수주 공세 돌파를 위해 스마트 조선소 구축을 통한 밸류체인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조선소 현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선박 블록을 제작하며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사진=페르소나 AI 캡처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 3사(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는 단순한 반복 작업을 돕던 고정형 자동화 설비의 수준을 넘어, 인지·판단·제어가 가능한 지능형 로봇을 공정 전반에 투입하며 현장의 무인화·자동화 초격차 기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가장 대표적인 변곡점은 최근 현장에 등장한 '2족 보행 용접 휴머노이드'다. 글로벌 1위 조선사인 HD현대는 선박 건조 현장에 투입할 사람 형태의 용접 로봇 상용화에 돌입했다. 앞서 23일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로보틱스, 미국 페르소나 AI(Persona AI) 등 3사는 '조선소 특화 용접용 휴머노이드 실증 및 상용화를 위한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각 분야 최고 수준의 기업들이 형성한 빈틈없는 '협력 밸류체인'에 있다. 복잡하고 발판이 불규칙한 선박 블록 내부에서 로봇이 제 몫을 다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융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HD한국조선해양은 그간 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선박 건조 공정 데이터를 제공해 AI 학습 모델을 개발하고, 계열사인 HD현대로보틱스는 시스템 통합(SI) 및 피지컬 AI 기반의 용접 품질 제어를 총괄한다. 여기에 미국 페르소나 AI가 2족 보행 하드웨어 플랫폼을 제공해 고숙련 용접공의 노하우를 기계에 이식하는 구조다.

경쟁사들의 행보 역시 매섭다. HD현대가 휴머노이드를 통한 유연한 현장 대처와 수직계열화 시너지에 집중한다면,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 생산 공정의 완전 무인화 및 특수 목적 로봇 도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거제조선소 내에 업계 최초로 배관 스풀(Spool) 제작 전 과정을 자동화한 '파이프 로보팹' 공장을 본격 가동했다. 쇳물과 불꽃이 튀는 가혹한 용접 환경을 로봇이 대체하면서 균일한 품질 확보와 생산성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한 가스 누출 위험이 있는 친환경 암모니아 실증 설비 등 위험 구역에는 자체 개발한 4족 보행 로봇 '워치독'을 투입해 24시간 안전 순찰을 전담시키고 있다.

한화오션 또한 대대적인 스마트 야드 구축을 진행 중이다. 2030년까지 거제 옥포조선소 내 선박 패널 조립 공정의 용접을 100% 자동화하겠다는 과감한 목표를 내걸었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협소한 구역이나 기상 변수가 많은 야외 작업장에서도 흔들림 없이 고품질 용접을 수행할 수 있는 AI 기반 협동 로봇을 전면 배치해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스마트 조선소로의 전환이 단순한 원가 절감 차원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약 26억 달러(약 3조5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조선 로봇 시장은 향후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조선업의 주도권 경쟁이 결국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로 이동했다고 지적한다. 중국 조선소들이 막대한 국가 자본을 등에 업고 하드웨어 덩치를 키우고 있지만 밸류체인 고도화에서 K-조선이 확실히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다. 향후 독자적인 AI 로봇 운영 체제(OS)와 자체 데이터 플랫폼을 얼마나 빨리 내재화하느냐가 글로벌 수주전의 최종 승패를 가를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처럼 값싼 인건비로 물량을 쳐내는 모델은 이미 생명력을 다했다"며 "고숙련 용접공의 고령화와 외국인 근로자 수급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딥러닝 기반의 정밀 로봇 도입은 생산 현장의 붕괴를 막고 납기를 준수하기 위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