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상문 기자] 영월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뿐 아니라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2006)’도 품고 있다. 

고(故)안성기와 박중훈이 함께한 이 작품은 지금도 영월 어딘가에서 조용히 상영 중이다.

단종의 시간 위에 남은 또 하나의 이야기
시간이 비켜간 거리와 오래된 간판의 다방, 옛 방송국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과 기억의 경계가 흐려진다.

한때 가장 빛나던 자리에서 밀려난 가수 최곤(박중훈 역)의 질문이 공기처럼 떠돈다.
“내가 아직도 스타냐.”
그 곁에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역)는 낮고 단단하게 답한다.
“네가 스타면 나는 매니저다.”

설명도 위로도 아닌 말,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관계를 확인하는 한마디다.

라디오스타의 흔적은 그런 온도를 닮아 있다.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것들이다.

   
▲ 영화 속 시간을 간직한 ‘라디오스타 박물관’은 배우 안성기의 연기와 맞물리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폐국에서 문화공간으로… 라디오스타 박물관
금강공원길 끝, 옛 KBS 영월방송국은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1965년 문을 연 방송국은 2004년 폐국됐고, 영화 ‘라디오스타’를 계기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건물 안에는 많은 방송 장비와 라디오 그리고 LP, 대본이 놓여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다. 
지나간 목소리와 남겨진 이야기들이다.

서울을 떠나 영월에 머물게 된 최곤.
낯선 현실 앞에서 흔들리던 그에게 박민수는 말한다.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사는 거야.”
설득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방식에 가까운 말이다.

이곳 역시 그렇다.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제자리를 다시 찾은 장소다.
전시장를 지나면 공간은 자연스럽게 현재로 이어진다.

보는 공간에서 참여하는 공간으로, 라디오는 기억을 넘어 경험으로 확장된다.

   
▲ 옛 KBS 영월방송국은 1965년 개소해 지역 방송의 중심 역할을 하다 2004년 폐국됐으며, 이후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을 계기로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재탄생해 아날로그 감성을 전하는 문화공간이 됐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영화의 결, 거리로 이어지다
관풍헌 인근 영화 촬영지 다방과 골목 일대는 ‘라디오스타’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단순한 촬영지를 넘어, 무너진 삶이 다시 이어지는 지점이다.

다시 무대에 서는 최곤과 끝까지 곁을 지키는 박민수.
“끝까지 간다”는 짧은 말에는 함께 버틴 시간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성공이 아니라, 끝내 곁을 지킨 시간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박민수는 앞에 나서지 않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인물로, 안성기의 절제된 연기는 더 오래 남고, 말보다 태도로 기억된다.

   
▲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울림을 전했던 김양의 다방은, 지금도 영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현재로 흐르는 ‘라디오의 시간’
영월에서는 지금도 라디오를 매개로 한 포럼과 음악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라디오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사람을 잇는 방식으로 다시 작동한다.

강은 흐르고 산은 자리를 지키며, 오래된 방송국은 여전히 이야기를 품는다.
멈춘 것은 기계일 뿐, ‘라디오스타’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 라디오스타 촬영지는 아니지만, 영화관 전면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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