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보라 기자] 자동차사고 경상환자의 장기치료를 관리하기 위한 이른바 ‘8주 룰’ 도입이 거듭 미뤄지며 정책 추진이 사실상 속도 조절 국면에 들어갔다.

‘8주 룰’은 경미한 사고에도 장기치료를 받는 ‘나이롱 환자’를 잡고 자동차보험 재정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지만, 의료계와 소비자단체의 우려가 이어지면서 시행 시점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 자동차사고 경상환자의 장기치료를 관리하기 위한 이른바 ‘8주 룰’ 도입이 의료계와 소비자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은 ‘8주 룰’의 시행 시점을 올해 1월에서 이달 1일, 다시  내달 1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내달 시행 역시 장담하기 어려워지면서 구체적인 도입 일정은 사실상 미정 상태다.

업계 일각에서는 무기한 연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으며, 제도 보완과 이해관계 조율을 거쳐 하반기 이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주 룰’은 교통사고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급)의 치료 기간이 8주를 초과할 경우 진단서 등 추가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의 심사를 받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보험업계는 일부 경상환자의 장기치료가 과잉진료로 이어지고, 이는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정 기간 이후 치료에 대한 관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지급보험금은 2015년 1조7500억원에서 2024년 3조3000억원으로 88.9% 증가했다.

또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5개 대형 손보사의 지난달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6.2%로 지난해 4월 이후 80%대의 손실 구간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환자의 상태와 회복 속도는 개인별로 큰 차이가 있는 만큼, 일률적인 기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상환자의 경우에도 8주 이상의 치료가 불가피한 사례가 존재하는데 ‘8주 룰’이 도입될 경우 의사의 치료 자율권이 침해되고 환자의 치료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역시 제도의 부작용 가능성을 지적한다. 보험사가 ‘8주’ 기준을 근거로 치료비 지급을 제한하거나 치료 중단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보상 규모가 축소되는 등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설계의 미비 역시 도입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추가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는 ‘적정성 심사’의 기준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았고, 심사 주체와 절차 또한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제도 시행 시 의료 현장과 보험 실무에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과잉진료 관리라는 정책적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해관계자 간 갈등과 제도 완성도 부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명확한 시행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심사 기준 정비와 사회적 합의 도출을 우선 과제로 두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경상환자의 장기치료가 보험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보험료 인상으로 선의의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는 만큼 일정 수준의 관리 장치는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의료계와 소비자 우려가 큰 사안인 만큼 제도 보완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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