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탈 행위' 규정…리스크 관리와 경계 모호
'물가안정법' 반시장성…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중동전쟁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비상경제체제를 가동하며 수급 안정을 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채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의 원인은 대외 변수에 있지만 그 해법을 국내 기업에 대한 통제와 도덕성 검증에서 찾으려 한다는 비판이다.

   
▲ 중동전쟁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비상경제체제를 가동하며 수급 안정을 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채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 전경.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전략적 비축'이 '매점매석'?…원자제 확보는 생존 전략

최근 산업부와 총리실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잇따라 경제단체 간담회와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며 '반공동체적 일탈 행위'를 언급, 기업의 담합과 매점매석에 대한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상적인 리스크 관리'와 '매점매석'의 경계를 정부가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매점매석은 물건을 사재기해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뜻하며, 위반 시 중범죄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는 비상시국에서 기업이 원자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경영진의 의무이자 생존 전략이다.

학계에서는 비상시국이 아니더라도 해당 법률이 반시장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재고를 조절하는 기업의 정당한 경영 판단을 '행정 편의적 수치'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사유재산권과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현진권 전 한국재정학회 회장은 "불확실성에 대비한 전략적 비축을 '일탈'로 규정하는 것은 기업더러 아무런 보험 없이 위기를 맞으라는 소리와 같다"고 지적했다.

◆ '독과점 프레임' 벗어나야…"영원한 승자 없는 시장의 자정 작용"

정부의 압박 이면에는 기업이 위기를 틈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것이라는 '독과점 프레임'이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 경제의 원리상 영원한 독점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잠시 독점 상태가 유지되더라도 곧 혁신적인 후발 주자가 등장하고 기술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시장의 승자가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독점 이윤은 그 혁신에 대한 일시적 보상일 뿐, 결국 시장의 자정 작용에 의해 균형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정부가 '단속' 카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시장의 유연한 대응보다는 행정력을 통한 인위적 통제를 우선시하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를 봐도 미국의 '국방생산법'이나 유럽의 경쟁법은 국가 안보나 명백한 시장지배력 남용이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개입한다. 우리처럼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재고 수량 자체를 상시 규제하며 시장의 신호를 왜곡하는 경우는 드물다.

◆ 정부, 감시자 아닌 '파트너'로 위기 극복해야

공급망 위기는 정부의 외교적 역량과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이 핵심이다. 정부는 4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 지원과 부처별 대응반 가동을 내세웠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적극적 조치'라는 명분 하에 이뤄질 가동률 간섭과 수요 통제를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에 지원책이 규제의 칼날을 가리는 '면피용'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비상경제체제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을 통제 대상이 아닌 협력 파트너로 설정하는 전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안심하고 전략적 비축에 나설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존중하면서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실질적인 민관 협력 모델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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