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이름은' 기자간담회, 제주 4·3의 아픔을 넘어 상생의 이름을 묻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제주 4·3 사건’이 거장의 스크린을 통해 동시대의 질문으로 되살아났다. 

2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내 이름은'의 언론배급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청년 정지영 감독과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배우 염혜란을 비롯해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영옥 역의 신우빈, 고민수 역의 최준우, 이경태 역의 박지빈이 참석해 작품에 담긴 묵직한 진심을 전했다.

   
▲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영화 '내 이름은'이 2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 공개됐다. 영화 시사회가 끝난 후 정지영 감독과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 등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사진=미디어펜


'내 이름은'은 이름을 바꾸려는 소년 영옥(신우빈 분)과 그 이름을 지키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 분)이 50년 전 감춰진 약속의 진실을 따라가는 제주 4. 3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정지영 감독의 스무 번째 장편 영화인 이 작품은 지난 2월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현지에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대형 투자자 없이 텀블벅 등을 통해 약 1만 명의 시민이 제작비를 보탠 ‘시민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정지영 감독은 “처음으로 한국 기자 분들께 영화를 선보이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떨리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번 영화의 핵심 키워드로 ‘폭력’을 꼽았다. “우리 현대사는 폭력의 역사다. 광주, 베트남 전쟁, 그리고 제주 4·3까지 국가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영화 '내 이름은'은 제주 4.3이라는 씻어지지 않는 우리 역사가 수십 년이 지나도 우리들 가슴에 어떤 생채기를 남기고 있는 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사진=CJ CGV 제공


특히 극 중 학교 폭력 설정을 삽입한 것에 대해 정 감독은 “4·3의 참혹함을 느닷없이 보여주는 것이 관객에게 충격일 것 같아 완충지대를 만들었다”며 “국가 폭력이든 학교 폭력이든 그 구조는 닮아있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건 결국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우정의 회복과 연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배우 염혜란은 4·3의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은 채 살아가는 정순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그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 접근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하지만 시나리오가 문학적으로 매우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출연 계기를 밝혔다.

염혜란은 정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을 연기했다. 그는 “정순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들에게는 촌스러운 이름을 고집하는 고집불통 엄마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 뒤에는 지켜내야만 했던 역사의 약속이 숨겨져 있다”며 “촬영하며 ‘엄마, 이제 엄마 이름으로 살아갑서’라는 대사가 나올 때 가장 마음이 아팠고 애착이 갔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상처의 회복과 평화의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기자간담회를 마친 후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감독은 염혜란의 연기에 대해 “정순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염혜란 씨가 그 폭력의 역사를 온전히 훑어주었다.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에 커다란 숨통을 틔워줬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내 이름은'은 잊혀진 이름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묻는다. 

간담회 말미 정 감독은 “이 아픈 이야기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1만 명의 시민이 심은 나무가 거장의 손길을 거쳐 울창한 숲이 되어 돌아온 '내 이름은'은 오는 4월 15일, 극장가에 잊지 못할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