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짱구 엄마의 말투는 왜 그대로일까
수정 2026-04-07 10:11:14
입력 2026-04-07 09:55:00
김민서 기자 | kim8270@mediapen.com
반복된 장면이 만든 성 역할, 드라마·예능·광고까지 이어진 구조
플랫폼은 변했지만 화면 속 관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플랫폼은 변했지만 화면 속 관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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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스포츠부 김민서 기자 | ||
두 문장을 들었을 때, 누가 남성이고 누가 여성일까. 전자를 여성, 후자를 남성으로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색함은 현실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봐온 화면이 만들어낸 감각에 가깝다.
TV는 오랜 시간 특정한 관계와 역할을 반복해왔다. 일일드라마를 보면 남성은 지시하고 여성은 응답한다. “밥은?”, “왜 아직 안 잤어” 같은 말 뒤에는 “금방 차릴게요”, “당신 피곤했죠?”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남성은 책임지는 가장으로, 여성은 헌신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고부갈등이나 불륜, 착한 며느리와 나쁜 여자 구도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설정은 개별 장면을 넘어 하나의 익숙한 틀로 축적돼 왔다.
이 같은 흐름은 예능에서도 반복된다. 남성 출연자가 대화를 주도하고, 여성 출연자는 리액션과 공감을 담당하는 역할에 머문다. 여성 출연자가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러브라인이 만들어지는 편집이 반복된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역할 배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MBC 예능 '라디오스타'('라스')는 이 같은 구조가 어떻게 유지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남성 MC 3인이 중심을 이루고, 여성 MC는 한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이 오랜 시간 반복돼 왔다. 이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예능 프로그램에 남성이 많을 수도 있고, 여성이 적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배치가 수 년,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이어질 경우, 그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화면 구성’으로 굳어진다. 남성 다수, 여성 소수의 구도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형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개별 출연자의 역할이 아니라, 이런 구도가 지속적으로 재현되며 특정한 구성를 당연한 전제로 만드는 것에 있다. 반복된 화면은 선택이 아닌 기준처럼 작동하고, 그 기준은 시청자의 인식 속에 고착된다.
이 관성은 다른 콘텐츠에서도 이어진다.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드러난다. 일본 원작에서는 부부가 서로 반말을 사용하는 반면, 국내 더빙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존댓말을 쓰는 방식으로 번역됐다. 단순한 언어 차이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더 자연스럽게 보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반영된 결과다. 이 설정은 가정 내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위계와 역할을 은근하게 구분 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비슷한 구조는 광고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온에어 된 한 신발 브랜드 광고의 ‘딸 편’과 ‘아들 편’이 그 예다. 딸은 엄마에게 신발을 사주고 여행을 보내며 “이제 내가 더 자주 보내줄게”라고 말한다. 반면 아들 편에서는 엄마가 아들을 챙기며 “세상에 첫 발을 디딘 아들, 편했으면”이라고 말한다. 딸과 아들은 모두 성인이다. 두 장면이 나란히 놓일 때 드러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딸은 돌봄을 제공하는 존재로, 아들은 돌봄을 받는 존재로 전제되는 구조다.
하나의 장면은 사소하다. 그러나 같은 장면이 계속 반복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로 다른 콘텐츠가 같은 방향의 관계를 그릴 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패턴이 된다. 그리고 그 패턴은 어느 순간부터 질문되지 않는다. 이 과정은 대개 노골적이지 않다. TV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익숙한 장면을 반복하며 인식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제 이 익숙한 방식이 더 이상 '고정'된 관념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콘텐츠 소비 환경은 이미 바뀌었다. OTT와 유튜브에서는 관계와 역할의 설정이 훨씬 다양해졌고, 기존의 틀을 비트는 장면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반면 TV는 여전히 비슷한 인물 구조와 서사를 반복한다. 그 결과, 같은 장면은 더 이상 익숙함이 아니라 어색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괴리는 시청자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젊은 시청자들이 TV를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플랫폼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반복되는 관계와 시선이 지금의 감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TV 역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확대하고, 클립 콘텐츠를 재가공하며, SNS를 통해 시청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유통 방식의 확장에 가까울 뿐, 화면 속 관계와 시선까지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형식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안의 이야기가 함께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면은 달라졌지만, 관계는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TV의 시대적 변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셈이다.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