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에너지 밀도·재활용 가치 연동해 최대 9000만 원 차등 지원
중국 타격 불가피…LG·삼성·SK, 맞춤형 폼팩터 밸류체인 탈환 겨냥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국내 전기버스 시장을 점유해 온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단가 공세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가 배터리의 성능과 환경성에 따라 보조금을 핀셋 개편하면서 기술력을 앞세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상용차 밸류체인 내 입지를 넓히며 업계 전반의 실적 방어와 턴어라운드를 이끌 새로운 기회 요인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 사진은 전기버스 충전기 특별점검 진행 중인 모습./사진=미디어펜 DB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저상버스 보조금은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재활용 가치 등에 따라 최대 9000만 원까지 차등 지급될 예정이다. 주행거리가 짧고 폐배터리 재활용이 사실상 어려운 중국산 범용 LFP 배터리 탑재 차량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상용차 생태계의 협상 주도권을 단숨에 배터리 셀 제조사로 이동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최종 수요자인 버스 운수업체들은 초기 구매 비용을 낮추려 중국산 배터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보조금 수령 규모가 시장 생존의 핵심 지표로 떠오르면서 이해관계자들의 역학 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간 수요자인 국내 버스 제조사(OEM)들은 보조금 상한선을 맞추기 위해 기존 중국산 대신 고성능 국산 배터리로 납품처를 시급히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구조가 단가에서 '성능' 위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자, 배터리 3사는 상용차 특화 폼팩터를 앞세워 밸류체인 확장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상용차는 차량 1대당 배터리 탑재량이 승용차의 5~10배에 달해 공장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는 핵심 B2B 밸류체인으로 꼽힌다.

◆ 단가 싸움 끝났다…'탑재량 10배' 상용차 거머쥘 고성능 승부수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파우치형 고전압 미드니켈(Mid-Ni)과 자체 개발한 고성능 LFP를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일본 1위 상용차 업체 이스즈(ISUZU), 유럽 상용차 배터리 팩 기업 FEPS 등과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상용차 밸류체인 진입을 공식화한 바 있다. 최근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3공장 지분을 전량 인수해 단독 운영으로 전환하며 생산 유연성까지 확보한 만큼 턴키 공급 역량으로 국내 버스 제조사들의 다변화된 수요를 빠르게 흡수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SDI는 기술 초격차 전략을 상용차 밸류체인에 적용할 전망이다. 무거운 하중을 견뎌야 하고 긴 주행거리가 필수적인 대형 버스 특성에 맞춰 고출력 하이니켈 각형 배터리(NCA) 공급을 확대한 것으로 파악된다. 나아가 차세대 46파이(지름 46㎜) 원통형 배터리의 본격적인 양산 체제를 가동하며 프리미엄 상용차 생태계 선점을 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미국 아마존에 납품되는 리비안의 전기 배달용 밴(EDV)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글로벌 상용차 레퍼런스를 확보한 것을 지렛대 삼아,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온은 합작사 재편을 통한 내실 다지기와 특화 제품 개발이라는 투트랙으로 틈새를 파고드는 양상이다.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테네시 공장을 단독 운영하기로 하는 등 밸류체인 다이어트를 통해 리스크를 줄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기존 LFP 배터리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히던 겨울철 저온 충방전 성능 저하 문제를 대폭 개선한 상용차 특화 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혹한기에도 버스 운행 차질을 막을 수 있는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상용차 제조사들과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번 보조금 핀셋 개편이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 시기에 K-배터리의 가동률을 끌어올릴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개편으로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던 중국산 배터리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며 "국내 상용차 제조사들의 국산 배터리 채택이 늘어나는 밸류체인 선순환을 통해 1분기 보릿고개를 넘은 배터리 3사가 하반기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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