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물류비 압박…정유업계 밸류체인 고도화 '속도전'
수정 2026-04-09 15:22:38
입력 2026-04-09 15:22:47
김동하 기자 | rlacogk@mediapen.com
핵심인 '호르무즈 개방' 지연…해상 운임 등 원유 조달 비용 압박 여전
정제마진 의존도 낮추고 비정유 체질 개선…밸류체인 수직계열화 무게
정제마진 의존도 낮추고 비정유 체질 개선…밸류체인 수직계열화 무게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과 이란의 전격적인 2주 휴전 합의로 국제 유가가 하락했지만 핵심 물류망인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지연되면서 국내 정유업계가 이중고에 빠졌다. 장부상 재고손실 우려와 물리적 수급 불안이 동시에 덮친 딜레마 상황 속에서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외부 변수를 통제할 밸류체인 수직계열화를 해법으로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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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이란의 전격적인 2주 휴전 합의로 국제 유가가 하락했지만 핵심 물류망인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지연되면서 국내 정유업계가 이중고에 빠졌다. 사진은 울산산업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
9일 업계에 따르면 미·이란 간 시한부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위협하던 국제 유가는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중동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비싼 원유를 선제적으로 비축했던 정유사로서는 당장 장부상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원유를 들여와 정제하고 판매하기까지 통상 1~2개월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이 기간 유가가 급락하면 과거 고가에 매입한 원유의 가치가 하락해 영업이익이 줄어든다. 정유업계는 원유가격이 급등하며 1분기 큰 이익을 봤지만, 고가로 들여온 원유 재고분은 가격 하락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장 구조의 불확실성이다. 유가는 휴전 기대감을 선반영해 떨어졌지만, 실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재개는 늦어지고 있어 물리적인 물류 병목 현상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재고손실로 영업이익이 깎이고 있는데, 실제 공장을 돌리기 위한 원유 조달 비용(우회 운임 등)과 수급 불안 리스크는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진퇴양난에 놓인 셈이다.
이에 업계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천수답' 수익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비정유 부문(석유화학) 밸류체인을 확장하는 체질 개선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 정제마진에 의존하던 과거의 관행을 버리고, 시장 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내부 통제력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선제적인 밸류체인 확장에 나선 곳으로는 에쓰오일이 꼽힌다. 에쓰오일은 9조 원을 투입해 원유에서 고부가가치 화학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TC2C) '샤힌 프로젝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나프타 등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화학제품으로 직행하는 내부 헤징 시스템을 마련해 정제마진이 흔들리더라도 밸류체인 하단의 수익으로 실적을 방어하겠다는 구상이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원료 다변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에 무게를 뒀다. GS칼텍스는 올레핀 생산 시설(MFC)을 통해 나프타뿐만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 부생가스 등 다양한 원료를 투입할 수 있는 유연한 밸류체인을 구축 중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HPC)를 가동하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탈황중질유를 주원료로 활용해 꽉 막힌 물류망과 원가 인상 압박 속에서도 원가 통제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장 운영 최적화와 친환경 포트폴리오 전환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제품 공급망의 수급 시차를 활용해 수요가 견조한 경유·항공유 등 중간유분의 생산 수율을 높여 단기 손실을 상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항공사 등 글로벌 수요처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어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친환경 에너지 중심으로 밸류체인을 전환하며 전통적 화석연료의 변동성 리스크 분산에 나섰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휴전으로 인한 단기 유가 급락과 물류 셧다운이 맞물린 작금의 사태는 단순 정제 사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원료 조달부터 최종 화학제품 생산까지 독자적인 밸류체인 통제력을 확보하는 기업이 극한의 변동성 속에서 생존 주도권을 증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