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스트림 원가 압박이 핵심 자재난으로…밸류체인 연쇄 붕괴 조짐
HD건설기계 등 중장비 투입 지연…첨단 인프라 생태계 마비 우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에너지 수급 차질이 유가 상승을 넘어 국가 첨단 산업인 AI(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에너지 안보 위기가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수급난을 부르고 이것이 필수 건설 자재 확보 지연과 중장비 가동 연기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도미노 현상이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사진=SK에코플랜트


12일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AI 고속도로(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상이 심각한 에너지 충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석유(70%)와 천연가스(20%)의 중동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천연가스 비축 물량 고갈 위기 등 공급망 차질이 첨단 산업단지 조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전력 다소비 산업인 AI 인프라를 기존 공급망이 있는 수도권에 유지할지,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부권으로 이전할지를 두고 정책적 딜레마마저 부각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거시적 위기는 산업 현장의 기초 소재 밸류체인부터 흔들고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유가 급등으로 핵심 기초 원료인 나프타 조달 비용이 치솟았지만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물량 공세로 범용 라인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가동률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며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방어하고 있다. 

문제는 석유화학 공장의 가동률 하락이 미드스트림인 핵심 건설 자재 생태계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프타에서 추출되는 폴리염화비닐(PVC)과 폴리우레탄 등은 대규모 공장에 필수적인 상하수도 배관재, 창호, 단열재의 핵심 원료다. 원료 수급이 막히자 관련 건자재 생산에 즉각적인 차질이 빚어지며, 대규모 첨단 공장 신축에 필요한 필수 자재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건자재 조달 일정이 늘어지면서 타격은 다운스트림인 대규모 건설 현장과 건설기계 밸류체인으로 고스란히 전이될 조짐을 보인다. 정부와 재계가 사활을 걸고 속도를 내던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와 수도권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신축 공사는 핵심 배관 및 단열재 확보에 비상이 걸리며 전체 공기가 지연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인프라 구축의 최전선에 있는 건설기계 업계의 실적 리스크로 직결될 전망이다. 현장의 자재 수급 문제로 초기 토목 공사와 골조 작업 일정이 꼬이면서 HD건설기계가 납품해야 할 굴착기와 휠로더 등 핵심 중장비의 현장 투입 일정이 연쇄적으로 뒤로 밀릴 조짐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비 회전율이 떨어지면 신규 발주와 교체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 특성상, 건설기계 업계는 상반기 수주 공백 우려는 물론 하반기 실적 가이던스마저 보수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불확실성에 직면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나프타 부족 사태에 대응해 대체재 발굴을 독려하고 있으나, 당장 대규모 AI 인프라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내구성과 효율성이 검증된 기존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플라스틱 건자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 내 내재화된 밸류체인을 바탕으로 AI 패권 경쟁의 인프라 속도전을 벌이는 반면, 한국은 외부 에너지 충격에 첨단 산업의 토대마저 흔들리는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나프타 대란은 개별 기업의 실적 악화를 넘어, 건설 자재 수급난과 중장비 가동 지연을 거쳐 국가 인프라 경쟁력을 갉아먹는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며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원가 상승 리스크를 밸류체인 내에서 분담할 수 있는 생태계 재편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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