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협②] 정부 주도 중국 vs 기업 독박 한국…"국가가 승패 갈라"
수정 2026-04-14 11:22:58
입력 2026-04-14 11:11:30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중국은 ‘국가’ 뛰는데 한국은 ‘기업’ 홀로 사투
기술 초격차 발목 잡는 4류 정치·행정 시스템
기술 초격차 발목 잡는 4류 정치·행정 시스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기술과 공정 혁신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최근의 산업 전쟁은 기업 개별의 경쟁력을 넘어 거대 자본과 행정력을 앞세운 ‘국가 대 국가’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등 자원 없는 국가의 설움을 겪고 있다. 특히 1등 기술을 보유하고도 시스템의 뒷받침 없이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미디어펜은 3회에 걸친 기획 연재를 통해, 사투를 벌이는 기업들의 현주소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우리 산업 시스템의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진정한 위기는 기술력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이 사력을 다해 초격차를 유지하는 동안, 국가라는 ‘시스템’이 그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국가 자원을 동원해 공장을 돌리는 중국과, 인허가와 전력망 확보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한국의 속도 차이는 이미 산업의 운명을 가를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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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1월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만찬 후 샤오미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샤오미폰은 경주 정상회담 때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공동취재 제공] | ||
◆ 자본 수익성 넘어선 ‘국가 총력전’에 벌어지는 격차
반도체 패권 경쟁의 성패가 기업의 기술력을 넘어 국가 인프라 지원 속도에서 갈리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의 ‘글로벌 팹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8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동을 시작할 신규 생산라인 108개 중 43.5%인 47개가 중국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 16개와 8개에 그친 북미와 유럽을 압도하는 규모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수익성과 무관하게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전폭적인 세제 혜택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정부는 초미세화 공정(28nm 이하)을 적용하는 제조 기업이 15년 이상 사업을 지속할 경우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전액 면제해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흑자 발생 연도부터 적용되는 이 혜택은 기업이 초기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재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가 된다.
파격적인 혜택은 제조 공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집적회로 및 공작기계 기업의 R&D 비용에 대해 120% 세액공제를 실시하고 있고, 무형자산에 대해서도 220%의 비용화 확대 조치를 단행했다. 기술 개발 단계부터 세금 부담을 대폭 낮춰 기업의 혁신 속도를 정부가 직접 끌어올리는 구조다.
여기에 원자재와 설비 부품 수입 시 관세 면제 혜택까지 소급 적용하며 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 세액공제 ‘일몰’에 발 묶인 투자… 한국 기업의 ‘독박 생존’
중국이 정부 주도의 ‘총력전’을 펼치는 동안, 한국은 직접적인 현금 보조금이 전혀 없는 ‘보조금 제로’ 국가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이 수조 원의 현금을 직접 지원하며 팹(Fab)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 정부의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은 세액공제 혜택마저 이익이 나야만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인 데다, 매번 일몰 기한 연장을 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어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비가 투입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적 지원의 부재는 현장의 인프라 병목 현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완전히 가동되려면 현재 공급량의 8배를 웃도는 15GW 이상의 전력과 하루 110만 톤의 용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자체 간 갈등과 복잡한 인허가 절차에 가로막혀 인프라 구축은 수년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전력망과 취수원 확보를 위한 주민 설득부터 행정 처리까지 사실상 기업이 홀로 짊어져야 하는 ‘독박 생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징벌적 에너지 비용의 역설… ‘기울어진 운동장’ 속 무너진 원가
국가 지원의 차이는 반도체를 넘어 배터리, 전기차 등 신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전기차와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 OECD 평균의 3~9배 수준에 달하는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 붓고 있다. 직접적인 현금 지원은 물론 토지 무상 제공, 저리 대출 등 복합적인 지원책이 총동원되는 구조다.
특히 제조 원가에 직결되는 에너지 인프라 지원은 우리 기업들이 넘기 힘든 벽이다. 중국은 자국 배터리 업체들을 대상으로 산업용 전기료를 최대 50%까지 할인해주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에너지 집약 산업인 배터리 공정 특성상, 이러한 전력 비용 보조는 곧바로 제품의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국가 주도의 과잉 공급을 불사하는 투자 지원은 글로벌 시장의 가격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양극재 공정의 경우, 국내 가동 비용이 중국 대비 월등히 높아졌다. 인프라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배터리 시장의 ‘보조금 격차’는 더욱 뼈아프다. 중국 정부가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몰아주는 ‘폐쇄적 보조금 정책’으로 CATL과 BYD를 글로벌 거물로 키워내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자국 우선주의 장벽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배터리 효율과 환경성을 고려한 보조금 개편안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지켜주는 중국식 전략을 상대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 "골든 타임 놓친다"… 1등 기술 발목 잡는 규제 정책
더 큰 문제는 미래 산업을 향한 ‘규제 샌드박스’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이나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정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표준을 선점하고 관련 규제를 즉각 철폐하며 앞서 나간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신사업 하나를 추진하려 해도 겹겹이 쌓인 환경 규제와 ‘특혜 논란’을 앞세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빈번하다. 기업이 혁신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이를 상용화할 ‘테스트베드’조차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중국은 국가가 앞장서서 장애물을 치워주며 기업의 질주를 돕는 반면, 한국은 기업이 장애물 달리기 선수가 돼 규제와 인프라 미비라는 허들을 스스로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을 극대화해 국가 자본과 행정력을 산업 현장에 즉각 투입하는 ‘고속 주행’을 하는 사이, 한국은 규제와 절차, 그리고 지역 이기주의에 함몰돼 산업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금의 위기는 개별 기업의 경쟁력 문제가 아닌, 국가 산업 시스템의 ‘총체적 지체’에 기인한다는 진단이다. 최 명예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기술 초격차를 사수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이를 보좌해야 할 정책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 [이런 기사 어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