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나이스 등 중견기업, 높은 상속세에 경영 포기
현대차·한화·HD현대 등 대기업도 상속세 부담 커
재계, 글로벌 수준에 맞는 상속세 개편 주장
[미디어펜=박준모 기자]상속세 부담으로 기업 경영에 차질이 발생하는 사례가 나타나며 세제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견기업의 경우 기업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지고, 대기업도 승계 과정에서 막대한 세 부담을 안으면서 경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중견기업은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으며, 대기업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20일 업계에 따르면 청호나이스 오너일가는 청호나이스 지분 75.1%와 계열사 마이크로필터 지분 등을 글로벌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분은 고(故) 정휘동 창업주가 보유했었는데, 지난해 6월 갑작스런 별세 이후 부인인 이경은 회장과 아들 정상훈 씨에게 상속됐다. 

하지만 이들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로 인해 지분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0년 간 정수기 시장에서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했던 청호나이스가 상속세 때문에 경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얼음정수기를 출시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상실하고, 기술 주도권도 약화될 수 있다. 

청호나이스 외에도 락앤락 등 견실한 국내 중견 기업이 중국 자본에 넘어간 사례가 있다. 문제는 대기업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를 이어 50%의 상속세를 내면 결국 대부분 재산이 지분에 쏠려 있는 오너가 특성상 경영권을 보장받기 힘들다. 

◆“미국·유럽보다 상속세율 높다”…중견기업 ‘속수무책’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유독 높은 편에 속한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며, 최대주주 할증이 적용될 경우 60%로 높아진다. 비상장사의 경우에는 65% 수준까지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이는 미국 40%, 영국 40%, 프랑스 45% 등 해외 선진국과도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최고세율은 55%로 높지만 가업 승계 요건을 충족하면 상속·증여세를 장기 유예해 세제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독일도 상속세율은 30% 수준이지만, 승계받은 기업을 일정 기간 이상 경영하면 최대 100%까지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은 청호나이스 사례처럼 중견기업의 경영 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7년 락앤락은 김준일 회장이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지분 전량을 글로벌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한샘도 지난 2021년 조창걸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는데, 상속세 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거론된다. 이 외에도 손톱깎이 글로벌 1위에 올랐던 쓰리쎄븐과 국내 1위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도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경영권을 넘긴 사례로 꼽힌다. 

반면 유럽 등 해외의 100년이 넘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상속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스웨덴 발렌베리가나 미국 포드, 독일의 하이네켄 등 주요 기업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속했지만, 법적 허용 한도에서 오너 승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중소 기업의 경우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통해 일부 지원해줄 뿐 중견 기업의 경우에도 상속 지원이 사실상 전무하다. 미국과 유럽처럼 재단을 통한 경영 승계도 불가능해 사실상 4대, 5대까지 승계가 이뤄지는 게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상속세의 경우 연부연납이 가능하다고 해도 연간 수백억 원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중견기업들이 사모펀드에 넘어가게 되면 장기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위축되면서 결국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부담…“상속세 개편 추진해야”

높은 상속세율 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승계가 이뤄져야 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이나 한화그룹 등 주요 기업들도 막대한 세 부담을 피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넥슨의 경우 지난 2022년 김정주 창업자가 별세하면서 약 6조 원 규모의 상속세가 유족에게 부과됐다. 유족 측은 이를 납부하기 위해 NXC 지분 30.64%를 물납하면서 정부가 2대 주주에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7.47%, 현대차 5.57%, 현대제철 11.8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주식가치를 고려하면 정의선 회장은 수조 원대의 상속세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김승연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한화 지분 22.65% 중 절반에 해당하는 11.32%를 김동관 부회장·김동원 사장·김동선 부사장에게 각각 4.86%, 3.23%, 3.23%를 증여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승계 과정에서의 세 부담을 분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김승연 회장이 보유한 잔여 지분에 대해서는 향후 상속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HD현대그룹 역시 정몽준 이사장이 HD현대 지분 26.6%를 보유하고 있어 정기선 회장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2조 원이 훌쩍 넘을 전망이다. 

대기업들도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재원으로 지분 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지배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으며, 해외 투기자본이 지분을 매입할 경우 경영 의사결정에서도 변수가 커지게 된다. 

해외 투기자본의 경우 단기적인 수익 중심의 경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나 사업 전략에도 제동을 걸 수 있어 기업의 성장 전략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기업가치가 높아질수록 상속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어 승계 과정에서의 재무적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주가 부양 정책을 펼치고 있어 기업가치 상승이 곧 상속세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가 부각되고 있다. 

기업들도 주가를 올려 기업가치를 높여야 하지만, 이에 따른 상속세 부담 증가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중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성장 전략과 승계 부담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세 부담은 중견기업의 경영 포기와 대기업의 지배구조 약화로 이어져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은 물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까지도 저해할 수 있다. 

이에 재계 내에서는 상속세율 인하나 최대주주 할증 폐지, 공제 확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 부담을 낮춰 중견기업이 장수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대기업들도 안정적인 승계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라며 “정부에서도 상법 개정 등 주가 부양에 나서고 있는 만큼 글로벌 수준에 맞는 상속세율 개편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