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국제 무대에서 확인된 한일 스포츠의 실력 격차는 단순히 타고난 재능 문제가 아니다. 일본 야구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비결은 수천 개의 고교 팀과 수십만 명의 등록 선수가 형성하고 있는 두터운 '인적 저변'에 있다. 시스템이 선수를 끊임 없이 배출하는 구조를 갖춘 일본과 달리, 한국은 몇몇 스타 플레이어의 개인 역량에 의존해 왔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이제 스포츠를 넘어 산업 정책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산업통상부가 올해 산업 전반 인공지능 전환(AX) 확산 예산으로 1조947억 원을 확정했다. 지난해보다 93.7% 늘어난 규모다. 여기에 추경까지 편성하면서 총 예산은 2조 원대를 넘어섰다. 2030년까지 AI 팩토리 500개를 짓고 100조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은 시속 160km의 강속구처럼 화려하다. 제조업 위기 돌파를 위해 AI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 의지는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치들로 증명된다. 하지만 정작 마운드 위에서 이 공을 던질 투수와 받아낼 포수가 짐을 싸고 있는 현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최근 산업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제조 AI 전환(M.AX)의 본질은 단순히 공장에 비싼 AI 장비를 들이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 현장을 지켜온 제조 명장들의 감각(암묵지)을 데이터화하고, AI가 스스로 공정 오류를 잡아내도록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는 '지능화 혁신'이다. 예컨대 "이런 소리가 나면 기계를 멈춰야 한다", "이 온도에서는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 등 말로 설명하기 힘든 노하우를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꿔 숙련공이 은퇴해도 그 기술이 공장에 남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즉 M.AX라는 경기를 승리로 이끌 핵심은 장비라는 마운드가 아니라, 이를 운용할 '고급 인재'라는 선수다.

문제는 혁신의 주체인 인재들의 엑소더스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으로 AI 인재를 많이 유출한 나라 세계 6위다. 국내 AI 인재 이동 지수는 -0.36으로 유출 폭이 매년 커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분석한 한국의 인재 유치 매력도 역시 세계 30~40위권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전문가의 임금 프리미엄은 미국(25%)과 캐나다(18%), 영국·프랑스·호주(15%) 등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인 6%에 불과하다. 아무리 2조 원을 들여 최첨단 마운드를 깔아줘도 정작 데이터를 관리하고 시스템을 설계할 선수는 처우와 환경을 이유로 타국 리그로 떠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인재를 붙잡을 제도적 설계가 필요한 대목에서 정부의 정책은 '제구력'을 잃는다. 일본은 과거 우리와 같은 순유출국이었으나,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순유입국(지수 0.69) 전환에 성공했다. 비결은 '특별고도인재제도(J-Skip)' 등 정교한 비자 시스템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학 중심의 국내 양성이라는 좁은 틀에 매몰돼 있고, M.AX를 현장에서 실행할 글로벌 인재 등 유인책은 전무하다. 선수가 누구인지 포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던지는 2조 원의 강속구는 결국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난 '폭투'가 될 수밖에 없다.

제구력을 잃은 강속구는 경기를 그르칠 뿐이다. 지금처럼 인력 공급망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 정량적 목표에만 매몰된다면 조 단위 예산은 제조업의 체질 개선 대신 '기계만 가득한 빈 공장'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이 수십 년간 고시엔의 흙먼지 속에서 인재 저변을 쌓아 오늘날의 야구 왕국을 건설했듯이 산업 정책 역시 인재가 머물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산업부의 M.AX 청사진이 떠나가는 인재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텅 빈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공허한 폭투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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