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 '리스트' 발표...비르투오소 너머 ‘내면의 드라마’ 집중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2017년, 텍사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울려 퍼진 이름은 한국 클래식계의 지형을 바꿨다.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선우예권. 당시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비르투오소(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우승 이후 약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단순히 화려한 테크닉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음악의 ‘본질’과 ‘목소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 그가 2020년 '모차르트', 2023년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에 이어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리스트'로 돌아온다. 오는 5월 7일 정식 발매를 앞두고, 4월 23일 수록곡 ‘위안(Consolation)’을 선공개하며 그가 해석한 리스트의 세계를 슬며시 드러냈다.

   
▲ 선우예권이 세 번째 스튜디어 앨범 '리스트'를 발매했다./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 음악사에서 ‘기교의 끝’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많은 연주자가 그의 곡을 통해 자신의 손가락 속도를 뽐내곤 하지만, 선우예권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사랑의 꿈’, ‘메피스토 왈츠’ 같은 대표곡 뿐만 아니라 덜 알려진 ‘고타 군주들의 묘지 섬’이나 데사우어의 가곡 편곡판인 ‘유혹’ 등을 골고루 담았다.

선우예권은 “리스트에 대한 나의 관심은 테크닉 너머에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지극히 서정적인 순간부터 초월적인 광기까지, 리스트가 작품에 불어넣은 ‘인간적인 목소리’와 ‘철학적인 깊이’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피아노를 빌려 노래하고 싶어 했던 리스트의 진심을, 선우예권 특유의 섬세하고 내밀한 타건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선우예권이 이번 앨범에서 특히 공을 들인 지점은 ‘편곡 작품’들이다. 슈만, 슈베르트, 멘델스존의 가곡을 피아노 곡으로 탈바꿈시킨 리스트의 천재성에 주목했다. 그는 리스트를 “인간의 목소리를 피아노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새롭게 말하는 ‘소리의 시인’”이라 정의한다.

특히 생소한 작곡가 데사우어의 가곡 ‘유혹’을 수록한 점은 선우예권의 음악적 호기심과 진정성을 보여준다. 남들이 다 치는 유명 곡에만 매몰되지 않고, 리스트가 꿰뚫어 보았던 음악적 가치를 발굴해 내는 그의 안목은 그가 이제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넘어 자신만의 음악적 사유를 구축한 아티스트임을 증명한다.

선우예권의 여정은 앨범 발매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5월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국 7개 도시에서 관객들과 직접 마주한다. 특히 5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 공연은 1부에 슈베르트 소나타 20번을 배치하고, 2부를 이번 앨범 수록곡인 리스트의 작품들로 채운다. 가곡적 선율과 극적인 서사가 공존하는 프로그램 구성은 그가 최근 천착하고 있는 ‘음악적 드라마’의 정점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화려한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가장 낮은 곳의 위로를 연주할 줄 아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이번 앨범 [리스트]는 기교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마주한 거장의 가장 순수한 고백이자,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관객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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