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45조' 요구·파업 카드 맞물리며 생산 차질·투자 위축 우려 확대
HBM 경쟁 치열 국면 속 갈등 격화… 노란봉투법 이후 협상 구도 변화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삼성전자 노동조합(노조)의 '성과급 45조 원' 요구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노조는 경쟁사 대비 보상 격차 등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단순 노사 갈등을 넘어 생산 차질과 투자 위축, 시장 변동성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23일 업계에 따르면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선 폐지와 함께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의 예상 영업이익이 3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노조 요구를 반영할 경우 성과급 재원은 약 45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는 최근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호황 속에서 SK하이닉스 등 경쟁사 대비 보상 수준 격차를 문제로 제기하며 실적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쟁력 회복을 전제로 기존 상한을 크게 웃도는 보상안을 제시했음에도 노조가 성과급 상한의 구조적 폐지와 제도화를 요구하면서 협상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요구 규모 자체로 쏠리고 있다. 특히 노조가 요구하는 약 45조 원 규모의 성과급 재원은 단순 보상 수준을 넘어서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과거 진행한 대형 인수합병(M&A)과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하만 인수 금액의 약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재원이 단기간에 분배로 전환될 경우 중장기 투자 여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선제적 투자와 기술 확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단기 보상 확대보다 미래 투자 확보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가운데 이번 논란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단순한 금액 규모를 넘어 '시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메모리 경쟁에서 주도권 회복을 추진하는 국면에서 노사 갈등이 격화되며 생산 차질 우려가 동시에 불거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기술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내부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외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은 연속성이 핵심인 산업이다. 일부 공정이나 인력에 조금만 문제가 발생해도 전체 라인의 가동 효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 공백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고, 납기 지연과 손실 확대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생산 리스크는 투자 전략에도 직결된다. 삼성전자가 HBM4 등 차세대 메모리 경쟁에서 속도를 끌어올려야 하는 시점에서 생산 공백이 발생할 경우 투자 집행의 우선순위 조정이나 일정 지연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경쟁사로 수요가 이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실'이 누적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시장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반도체는 글로벌 고객사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장기 계약이 이뤄지는 산업인 만큼, 공급 안정성에 대한 우려는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주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까지 맞물릴 경우 투자자 불확실성도 커지며 금융시장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결국 이러한 영향은 기업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생산 차질은 협력사 가동률 저하로 이어지고, 삼성전자가 국내 산업과 수출을 상징하는 ‘국민 기업’으로 평가받는 만큼 그 파급은 고용과 지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공급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전자제품 가격 변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파급 범위가 산업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보호 취지와 다른 흐름… 노란봉투법 이후 협상 환경 변화

이 같은 강경한 협상 기조의 배경에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변화한 제도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손해배상 책임 범위 축소로 파업에 따른 부담이 낮아지면서, 노조의 협상 전략이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됐다는 해석이다.

당초 하청·비정규직 보호를 취지로 도입된 법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까지 협상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로 인해 협상 방식이 대화 중심에서 손실 가능성을 전제로 한 압박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인건비 부담과 노사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면서 기업들이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AI(인공지능) 기반 운영 전환을 서두를 유인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는 인력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의 구조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인력 수요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도 변화가 노사 협상 방식뿐 아니라 기업의 중장기 경영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용 구조와 리스크 관리 부담이 동시에 커지면서 투자와 고용, 생산 전략 전반이 보다 보수적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국내 수출과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기업인 만큼 노사 갈등이 미치는 파급력 자체가 크다"며 "특히 생산 차질과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전제로 한 협상 방식은 그 부담이 기업을 넘어 시장과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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