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FLNG 르네상스②] "수주 독식에도 웃지 못한다"…핵심 장비 국산화 총력
수정 2026-04-24 15:57:01
입력 2026-04-24 14:25:03
김동하 기자 | rlacogk@mediapen.com
선체 시공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상부 원천 설계는 해외 의존
과거 해양플랜트 적자 사태 뼈아픈 교훈…설계 주도권 확보 총력
삼성 표준모델·한화 인력·HD 데이터…기술 내재화 가속화 전망
과거 해양플랜트 적자 사태 뼈아픈 교훈…설계 주도권 확보 총력
삼성 표준모델·한화 인력·HD 데이터…기술 내재화 가속화 전망
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와 탄소중립 전환 등의 이슈가 겹치며 전 세계 에너지 지형이 바뀌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해상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가 오일 메이저들의 대안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배 한 척당 수조 원을 호가하는 FLNG 시장은 현재 국내 조선 3사가 수주를 주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본지는 이번 시리즈 기획을 통해 중국의 거센 추격과 글로벌 정세 급변 속에서 국내 조선 업계가 나아갈 방향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 미래 생존 전략 등에 대해 심층 분석해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전세계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온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밸류체인 상단에 위치한 원천 설계 기술의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는 압도적인 선박 건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FLNG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최고 부가가치 영역인 상부 플랜트(Topside) 기본설계(FEED) 부문에서는 여전히 해외 기업들과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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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조선업계가 전세계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온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밸류체인 상단에 위치한 원천 설계 기술의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제미나이 | ||
◆ 통합 설계 역량은 세계 최고…원천 화학 공정 설계는 과제
FLNG는 크게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배 형태의 하부 선체(Hull)와, 해저에서 끌어올린 천연가스를 불순물과 분리해 정제하고 영하 162도로 액화하는 화학 설비인 상부 플랜트(Topside)로 나뉜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수많 개의 부품과 복잡한 배관을 한정되고 좁은 상부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조립하는 EPC(설계·조달·시공) 통합 설계 및 제작 역량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거대한 하드웨어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조립하는 시공 능력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다.
하지만 상부 플랜츠 원천 기본설계 역량은 상대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고도의 복잡한 화학 공정과 극저온 액화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탑사이드 FEED는 현재 테크닙(프랑스), JGC(일본), KBR(미국) 등 오랜 기간 데이터를 축적한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다.
발주처인 다국적 오일 메이저들은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이들 해외 엔지니어링사와 손잡고 핵심 설계를 확정하는 경향이 짙다. 결국 한국 조선사들은 이러한 원천 설계도를 바탕으로 공간 배치를 위한 상세 설계를 진행하고 조달 및 건조를 맡는 밸류체인 구조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를 수주하더라도 적지 않은 규모의 엔지니어링 비용이 해외로 지출된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국내 조선업계가 탑사이드 내재화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2010년대 중반 조선업계를 덮쳤던 해양플랜트 대규모 적자 사태의 교훈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국내 조선사들은 독자적인 원천 설계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양플랜트의 설계, 조달, 시공을 모두 책임지는 턴키 방식의 일괄 수주에 무리하게 뛰어들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핵심 설계 능력이 없다 보니 설계 검증에 난항을 겪었고 해외 엔지니어링사나 발주처의 잦은 설계 변경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추가 비용과 공기 지연이 발생했다. 이는 대형 조선사들이 수조 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시공 능력만으로는 소포트웨어(설계)에서 파생되는 프로젝트 리스크를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체감했다. 이후 업계 내부에서는 점진적으로 설계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 표준 모델과 핵심 장비 국산화…내재화 속도 낸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국내 조선사들은 탑사이드 기술 내재화를 위한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당장 글로벌 엔지니어링사를 뛰어넘는 원천 화학 공정 기술을 단번에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설계 표준화와 주요 장비 국산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가는 양상이다.
삼성중공업은 독자적인 FLNG 표준 모델인 'MLF-N'을 선제적으로 개발했다. 선박의 뼈대와 기본 구조를 우리 기술로 미리 규격화함으로써, 발주처의 잦은 설계 변경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고 건조 기간을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나아가 해상에서 배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계류 시스템'이나 천연가스 액화 공정의 핵심 장비인 '컴팬더' 등의 국산화에 성공하거나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며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해양플랜트 사업 확장을 위해 글로벌 수준의 해양 엔지니어링 인력을 확충하며, 탑사이드 공정 제어 및 상세 설계 역량 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산하 HD현대중공업도 그룹 내 전문 조직을 통해 해양 설비 설계의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며 기술 내재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조선사들의 자체 역량 확보와 더불어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과의 밸류체인 연계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현재 FLNG 상부 플랜트에 들어가는 핵심 압축기, 가스터빈, 극저온 밸브 등은 납품 실적(트랙 레코드)을 요구하는 발주처의 엄격한 기준 탓에 외산 제품의 점유율이 높은 편이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정부 및 연구기관과 협력해 중소·중견기업들이 개발한 해양플랜트용 장비를 실제 프로젝트에서 테스트하고 실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K-조선이 압도적인 EPC 통합 역량과 표준화 모델 개발로 시장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 원천 설계와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율을 꾸준히 높여가야만 장기적인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다"며 "업계의 자체적인 기술 내재화 노력과 함께 튼튼한 해양플랜트 소부장 생태계 육성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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