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 피하려다 중국 광물 족쇄…K배터리 '자원 동맹' 돌파구
수정 2026-04-28 15:37:57
입력 2026-04-28 15:22:10
김동하 기자 | rlacogk@mediapen.com
중동 리스크 피해 청정에너지 전환 가속…역설적 중국 광물 패권 강화
호주·남미 등 제3의 자원 영토 개척 총력…금융·외교적 지원 뒷받침 필수
호주·남미 등 제3의 자원 영토 개척 총력…금융·외교적 지원 뒷받침 필수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촉발된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도리어 중국의 광물 패권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호주, 남미 등지에 대한 직접 투자와 '탈(脫)중국 자원 동맹'을 통해 원가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호르무즈 해협 불안정성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화석연료 탈피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과거 중동 국가들이 쥐고 있던 에너지 주도권이 이제는 전 세계 리튬과 니켈, 코발트 제련 시장을 독점한 중국으로 옮겨간 형국이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 변화가 도리어 배터리 원자재의 80% 이상을 통제하는 중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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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레 염호에서 생산된 리튬.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칠레 생산진흥청 | ||
◆ 석유 패권 피하려다 중국 광물 족쇄에 발목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이동은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생존 전략을 뒤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은 완성된 배터리 셀 제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 소재의 원자재 제련 단계는 여전히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팽창할수록 중국산 소재를 더 많이 사와야 하는 구조적 한계는 K배터리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광산 지분을 매입하고 자국 내에 대규모 제련 인프라를 구축하며 거대한 광물 생태계를 완성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이는 K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수주를 싹쓸이하며 생산 거점을 넓히더라도,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해 수출 밸브를 잠글 경우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취약한 지위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해관계자 역학 구도 속에서 서방 국가들은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통상 규제 역시 국내 기업들에게 탈중국을 강제하는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은 동맹국의 안보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실질적인 원료 수급을 위해 중국을 우회할 완전히 새로운 자원 영토를 개척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공급망 수직적 종속이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을 구조적으로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터리 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자재 가격 결정권을 중국이 쥐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완성차 시장에서 대규모 수주를 따내더라도 실질적인 마진은 원료를 독점한 중국 소재 기업들이 흡수하는 기형적인 수익 생태계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서방 국가들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마저 원가 방어선을 옥죄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 광산업체 보호를 위해 추진 중인 '핵심 광물 가격 하한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광물 시세가 하락해도 K배터리가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어 원가 절감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 업계가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우려를 담은 공동 의견서를 제출한 것도 위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단가 인하 압박을 받고 아래에서는 정책적 하한선에 갇히는 샌드위치 수익 구조를 피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마진 누수 현상은 배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분석된다. 조 단위의 설비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 훼손된 수익성은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한 재원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중국 소재 업체들의 배만 불려주거나 정책 리스크에 휘둘리는 현재의 기형적 수익 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은 원료 공급선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방어에 나서고 있다.
◆ 호주·남미로 뻗은 자원 영토…3사3색 공급망 재편
국내 배터리 업계는 마진 탈취와 공급망 족쇄를 끊어내기 위해 중국을 우회하는 자원 영토 개발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라이온타운, 칠레 SSQM 등 자원 부국 기업들과 대규모 리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수입국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광물의 안정적 조달을 통해 원가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SK온과 삼성SDI 역시 독자적인 밸류체인 방어선 구축에 분주하다. SK온은 호주의 '레이크 리소스' 등과 지분 투자 계약을 맺고 현지 조달 비중을 높이고 있으며, 삼성SDI는 캐나다 니켈 광산 개발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등 북미 현지 조달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전략은 광물 공급사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원자재 가격 변동 리스크를 통제하고 마진 누수를 원천 차단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이러한 배터리 기업들의 고군분투가 실질적인 원가 방어선 구축으로 이어지려면 범정부 차원의 촘촘한 금융 및 외교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해외 자원 개발은 조 단위의 막대한 자금이 장기간 투입돼야 하는 고위험 사업이다. 따라서 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의 저리 융자와 특별 보증 등 강력한 유인책이 동원되어 민간 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국가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핵심 파트너국과의 경제 외교를 통한 관세 장벽 완화 등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호주,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 자원 부국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고도화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서 광물을 조달할 때 겪는 각종 규제와 진입 장벽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민간 기업의 각자도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간의 튼튼한 공급망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동 리스크가 원유 수급의 물리적 문제라면 중국 광물 패권은 산업 전체의 생사권과 직결된 구조적 문제"라며 "독자적인 자원 영토를 확보하고 중국에 기울어진 수익 생태계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K배터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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