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마비,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미주로 이동…파이프라인 등 인프라 투자 폭발
미국 대출 지원 확대·베네수엘라 시추기 재가동 등 밸류체인 전반 중장비 수요 자극
중국·유럽 건설 경기 침체 속 갇혔던 업계, 미주 대륙의 '에너지 특수'로 돌파구 마련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 지정학 리스크로 발생한 해상 물류 마비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무게중심을 미주 대륙으로 이동시키면서 K-건설기계 업계가 새로운 호황기를 맞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남미 국가들 중심 유전 개발 및 에너지 인프라 확충 움직임에 따라 투입될 굴착기와 중장비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유럽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전하던 국내 건설기계 기업들이 미주 발(發) '에너지 특수'를 지렛대 삼아 글로벌 밸류체인 내 입지를 넓혀 나갈지 주목된다.

   
▲ 중동 지정학 리스크로 발생한 해상 물류 마비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무게중심을 미주 대륙으로 이동시키면서 K-건설기계 업계가 새로운 호황기를 맞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사진=제미나이


1일 업계에 따르면 남미 주요 산유국인 배네수엘라가 최근 석유 및 가스 계약을 개편하며 수년간 창고에 보관했던 원유 시추기(Oil rig)와 특수 장비들의 조립 및 수리를 재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중동을 대체할 원유 공급처로서 남미 지역의 에너지 생산 활동이 점진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음을 시사하는 시그널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여기에 북미 시장의 정책적 움직임도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금융센터 발간 글로벌 은행산업 트렌드에 따르면 미국 수출입은행은 중동 전쟁발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안 속에서 자국의 석유 및 가스 수출을 증진하기 위해 에너지 기업과 관련 공급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을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기업들이 설비 투자(CAPEX)에 나설 수 있는 거시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미주 대륙의 밸류체인 변화는 인프라 건설 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고 채굴된 원유와 가스를 운송할 파이프라인 등을 구축하는 초기 단계에는 굴착기, 휠로더 등 중대형 건설기계의 투입이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안이 건설기계 업계에는 새로운 수주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시장 구조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 부동산 침체 벗어날 모멘텀…공급자 우위 역학 재편 가능성

미주 지역의 에너지 특수 기대감은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 악재들을 완화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거론된다. 국내 건설기계 업계는 밸류체인 하단의 핵심 발주처였던 중국의 장기적인 부동산 침체와 유럽의 고금리발(發) 건설 경기 위축으로 인해 수요 둔화에 직면해 왔다. 판매처 다변화가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에너지 인프라 수요는 포트폴리오를 개선할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발주처와 공급사 간의 이해관계자 역학 구조가 공급사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조성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유전 가동과 파이프라인 건설 일정을 맞춰야 하는 에너지 기업들 입장에서는 건설기계의 신속한 조달과 내구성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장비 납기 및 품질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수주 협상에서 긍정적인 입지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광산 및 인프라 개발 현장에 특화된 중대형 라인업과 촘촘한 딜러망을 갖춘 기업들이 밸류체인 상단에서 파생되는 기회를 확보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검증된 장비를 생산하는 제조사의 가격 결정력을 뒷받침해 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글로벌 시장의 흐름에 맞춰 HD건설기계, 두산밥캣 등 K-건설기계 주요 기업들은 북미 및 중남미 지역의 영업 전략을 다듬으며 수주 기회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HD건설기계는 북미 인프라용 대형 굴착기와 남미 광산 채굴용 장비 라인업을 강화하고 현지 딜러망을 통한 대응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형 장비에 강점을 가진 두산밥캣 역시 파이프라인 부대 공사 등에 활용되는 콤팩트 장비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이 시장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배경에는 지정학적 밸류체인의 분절 현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쉬공(XCMG)을 비롯한 중국 건설기계 업체들은 미국의 공급망 정책과 관세 장벽 등의 리스크로 인해 미주 에너지 인프라 관련 입찰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업체들의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우수한 내구성과 텔레매틱스(원격 관리) 기술 등을 앞세운 K-건설기계는 발주처의 대안 중 하나로 꼽히는 분위기다. 

건설기계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에너지 관련 정책과 남미의 자원 개발이 맞물리며 미주 지역의 인프라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 업체들의 운신 폭이 좁아진 상황인 만큼, 현지 영업망과 제품 경쟁력을 갖춘 K-건설기계 기업들이 관련 사이클의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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