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서 드문 ‘메타 픽션’ 구조...김종회 평론가 “작가와 독자 잇는 새로운 지평”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황순원문학상 수상자이자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학 필수 교재 선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가 차인표가 1년 반 만에 장편소설 '우리동네 도서관'(사유와공감 출간)으로 돌아왔다. 

이번 신작은 그간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나 ’인어사냥‘, 그리고 ’그들의 하루‘ 등 전쟁 피해자의 목소리나 인간의 욕망, 소외된 삶의 고단함을 다뤘던 전작들을 넘어,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본질을 파고드는 파격적인 ‘메타 소설(Meta-fiction)’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문단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벽을 허물다…한국 문단 최초의 본격 ‘메타 소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소설이 한국 문단에서는 극히 드문 ‘메타 소설’의 형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메타 소설이란 소설 속 등장인물이 자신이 처한 세계가 허구임을 인지하고 있거나, 창작물 내부에서 또 다른 창작물을 다루며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 장르를 말한다.

   
▲ 배우이기도 한 소설가 차인표가 1년 반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 '우리동네 도서관'. 메타 소설이라는 다소 생경한 형태를 지향하는 이 작품에 대해 문단의 관심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사유와공감 제공


주로 픽션과 현실 사이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아 성찰과 아이러니를 유도하는데, 이는 “현실 역시 하나의 서사 내러티브일 뿐”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을 강하게 반영한다. 해외에서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 등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으나, 국내 본격 문학 시장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생소하고 도전적인 시도다.

차인표 작가는 소설 속에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해 글을 쓰는 작가 ‘나’를 배치한다. ‘나’는 고구려 시대의 화공 ‘번각’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존재인 ‘용’이 현실 세계의 작가 앞에 직접 나타나 말을 건넨다. 용은 작가의 창작 한계와 욕망을 비웃으며 끊임없이 혼란을 야기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서부터가 작가의 실제 고뇌인지 모호하게 만들며,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김종회 평론가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밀도 있는 질문”

이번 신작에 비평을 쓴 김종회 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현 국제펜 한국본부 세계한글작가대회 집행위원장,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 촌장) 역시 차인표 작가의 이러한 실험적 시도에 주목했다. 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낸 권위자인 김 교수는 이 소설이 취하고 있는 메타 소설 형식을 ‘문학적 파격’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글쓰기의 실패와 한계를 작품 안에 솔직하게 노출시키며, 쓰는 행위의 본질이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작중 주인공 ‘나’가 가상의 주인공 ‘번각’과 나란히 걸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쓰는 일’에 대해 골몰하는 장면은, 소설가 개인의 창작욕을 넘어 독자라는 타인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자아 성찰적 여정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화공 ‘번각’과 현대의 작가…시공을 초월한 ‘연대’의 기록

소설의 서사는 이원적으로 전개된다. 1600년 전 고구려의 화공 번각은 “직접 본 것 외에는 절대 그리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졌으나, 귀족의 강요로 보지 못한 ‘용’을 그려야 하는 생존의 위기에 처한다. 한편, 현대의 작가 ‘나’는 이 번각의 이야기를 완성하려 애쓰지만,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소외된 이들의 삶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 차인표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완벽히 구분되는 일상 속 소설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TKC 픽쳐스 제공


작가는 송이, 노신사, 출렁이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끝까지 서사 안으로 끌어안는다. 소설은 이들을 단순히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이름으로 작가와 연결되는 존중의 대상으로 격상시킨다. “어떤 걸작도 읽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 소설이 도달하는 결론은 결국 독자”라는 고백은 이 메타 소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 문단에 던진 새로운 화두…‘쓰는 이’와 ‘읽는 이’의 공생

'우리동네 도서관'은 1부 ‘쓰는 이’, 2부 ‘읽는 이’, 3부 ‘기억하는 이’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이는 작가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독자를 거쳐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되는 문학의 생애 주기를 상징한다.

외국 문학계에서는 드물게 시도되는 메타 소설의 형식을 빌려와 한국적 서사와 결합한 이번 작품은 차인표라는 작가가 가진 문학적 야심과 진정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이 파격적인 실험이 향후 우리 문단에 어떠한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고민을 안겨줄지 문단과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삶을 기꺼이 ‘읽어내길’ 선택하는 ‘독자’라는 존재의 필연성을 확인시켜 주는 이 소설은 올봄 독자들에게 가장 지적인 동시에 따뜻한 위로가 될 전망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