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보장·해고 제한이라는 ‘철갑’ 두른 노조, 경영권 영역까지 침범
혁신보다 기득권… AI·로봇 등 산업 전환 가로막는 ‘노동 경직성’ 역습
반도체 산업 등 AI 관련 국내 일부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노조의 지나친 요구에 시달리며 거대한 파고에 직면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는 기업들의 노조가 사상 최대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면서 노조 리스크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노조의 요구가 과거 고용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노조 인력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한탕주의에 가까운 보상 심리가 강해졌다. 이에 미디어펜은 국내 주요 기업의 노사 협상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노사 상생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대한민국 산업 현장이 ‘노조의 시간’에 갇혔다. 반도체의 삼성전자와 자동차의 현대차·기아 등 국가 기간산업은 물론, 바이오와 IT 혁신의 상징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카카오에 이르기까지 산업계 전 방위가 노조의 집단행동에 몸살을 앓고 있다.

노조의 요구는 이미 실적 보상을 넘어 경영권의 핵심인 인사권까지 흔드는 수준에 도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조 비대화’의 근본 원인으로 우리 노동 시장의 고질적 병폐인 ‘해고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노동 경직성’을 지목하고 있다.

   
▲ 지난 4월 22일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1게이트 정문 앞에서 열린 노조 결의 대회. /사진=미디어펜 박재훈 기자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고용·해고 유연성은 141개국 중 102위를 기록하며 OECD 최하위 수준의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 ‘나갈 길’ 막히니 기득권만 커진 구조… “한 번 뽑으면 끝”

최근 노조들이 ‘역대급 성과급’과 ‘정년 연장’을 동시에 요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경영진이 인력 운용의 자율성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경영상 해고조차 요건이 까다로워 한 번 채용하면 정년까지 기업이 모든 고용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다.

이러한 ‘정년 보장’은 노조에 무소불위의 협상력을 부여했다. 고용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성과’ 대신 ‘기득권’이 자리 잡으면서, 노조는 기업의 위기나 산업 전환의 긴박함보다 당장의 집단 이익 극대화를 우선시하게 됐다.

삼성바이오나 카카오 등 신산업 분야에서는 MZ세대 중심의 ‘공정성 요구’가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으나, 최근에는 이조차 기득권 사수를 위한 전통적인 강성 투쟁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어차피 잘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정치적 투쟁과 과도한 보상 요구를 가능케 하는 토양이 된 셈이다.


◆ 산업 전환 가로막는 ‘기득권 벽’… 기업들 “살기 위해 해외로”

​​문제는 이러한 노동 경직성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전환과 AI 도입 등 급격한 공정 변화 속에서 유연한 인력 재배치는 필수 전략이다. 그러나 ‘해고의 자유’가 사실상 실종된 상황에서 노조는 신기술 도입마저 ‘일자리 침해’로 규정하며 정면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기아 노조는 AI와 로봇 도입 시에도 인위적인 감원을 금지하는 ‘총고용 보장’ 명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전기차 라인 전환 시 부품 수 감소에 따른 인력 효율화가 필수적임에도, 노조가 기존의 작업 시간 유지를 고수하며 사측과 대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는 인력 효율화가 생존과 직결된 미래차 전환기에 기업의 손발을 묶는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이러한 리스크는 이미 기업들의 투자 지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29년 만에 울산 전기차 신공장을 준공했으나, 이 과정에서 고용 안정을 담보한 노사 간 ‘특별 합의’가 선행되어야 했고 향후 가동 과정에서도 인력 재배치를 둘러싼 노사 협의가 핵심 변수로 남아있다.

국내 투자가 공전하는 사이, 현대차·기아는 미국 조지아(HMGMA)와 인도 등 글로벌 전략 거점의 생산 역량을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들 해외 공장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국내 생산 거점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단순한 시장 접근성 확보를 넘어, 국내의 경직된 노사 관계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탈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리쇼어링(해외 복귀)을 독려하고 있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기업들이 복귀 기피 1순위로 ‘노동 규제’를 꼽는 것은 결국 노동 유연성 없이는 국내 투자 유인이 작동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 글로벌은 ‘유연한 이동’… 한국은 성벽 갇힌 ‘고인 물’

해외 선진국들은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관리한다. 미국의 ‘임의 고용(Employment-at-will)’ 원칙은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 변화에 맞춰 인력을 기민하게 재배치하며 혁신을 주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북유럽의 덴마크 역시 기업의 해고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되 국가가 재취업을 책임지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모델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해고가 ‘파멸’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의 이동’으로 기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달리, 한국은 노조라는 성벽 안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 개혁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도입된 정리해고제 이후 역대 정부마다 단골 메뉴였으나, 매번 정치적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동 유연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거대 양대 노총은 ‘총파업’을 전면에 내세워 물리적 압박을 가했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표 계산을 우선하며 개혁안을 누더기로 만들거나 폐기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해고 유연화’는 한국 사회에서 생존권과 직결된 금기어로 통한다. 탄탄한 사회안전망 없이 유연화만 추진될 경우 발생할 사회적 반발을 감당할 정치적 결단력이 부재했다는 지적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성과와 무관한 정년 보장이 노동 현장에 가져온 도덕적 해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성과와 상관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경직된 구조는 근로자들에게 ‘설렁설렁 일해도 된다’는 인식을 학습시킨다”며 “노동조합이 공급을 독점하고 과도한 보호막을 치면서, 개인이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할 혁신 동기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 해법으로 미국의 ‘임의 고용’ 모델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해고와 고용이 자유로운 ‘임의 고용’ 원칙이 도입돼야 한다”며 “정년에 안주하는 구조를 깨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만 기업이 활력을 찾고, 그 과실이 청년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