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은 ‘책무’일 뿐 ‘지분’ 아냐… 경영권 침해하는 관치 논리
적자 땐 외면하고 이익 나면 “내놔라”… 리스크 분담 없는 이중잣대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삼성전자 등 기업을 향해 내놓는 메시지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의 지원을 근거로 기업의 성과를 공공의 공으로 돌리는 이른바 ‘국민기업’ 논리가 지원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기업을 압박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발언들이 기업 지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엄연히 주주가 주인인 사유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투입한 인프라를 ‘지분’처럼 활용해 경영 성과에 개입하려는 관치 시대의 발상이 반복되고 있다.

   
▲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삼성전자 등 기업을 향해 내놓는 ‘응원’의 메시지가 오히려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의 지원을 근거로 기업의 성과를 공공의 공으로 돌리는 이른바 ‘국민기업’ 논리가 지원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기업을 압박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우리가 밀어줬다”는 생색… 지원을 ‘부채’로 만드는 당국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초과이익에 대해 “정부의 송배전·발전소 투자와 국민의 노력이 있었다”며 공을 국가와 국민에게 돌렸다. 이는  경제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의 발언이었으나, 역설적으로 기업이 거둔 이익에 대해 정부가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난 셈이 됐다.

전날에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AI·반도체 초과 이윤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 배당금’ 제도까지 들고 나왔다. 김 실장은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기업의 이익을 사회 전체와 공유해야 한다는 뜻을 노골화했다. 이러한 논조는 박용진 전 의원의 “국민 혈세로 큰 기업” 발언이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이익은 내부 구성원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는 이를 산업 지원에 대한 보답 차원의 ‘상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국가의 전략적 투자가 언제든 경영 개입이나 이익 환수의 명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 리스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 청와대까지 가세해 기업의 성장을 국가의 시혜로 치부하며 사실상 이익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고 나선 모양새다.

삼성은 불과 2년 전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2023년 영업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사이클이 돌아오면서 대규모 흑자를 내게 되니 초과 세수가 생겼다.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가 세수를 늘리고 싶으면 기업을 지원하고 이익이 나게 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는 노란봉투법 등 기업에 불리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물론, 대규모 투자의 시기에 이익 나누기에 혈안이 돼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정부의 ‘이상한 논리’… 글로벌 경쟁력 갉아먹는 역효과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글로벌 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기업들에 실질적인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초미세 공정과 AI 반도체 전쟁 등 사활을 건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도와줬으니 내놔라” 식의 논리는 기업의 과감한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원을 빌미로 기업에 도덕적 잣대나 사회적 책임 프레임을 강요하는 행위는 민간의 자율적인 투자 의지를 위축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리스크가 될 뿐이다. 더욱이 정부 당국이 간과하는 점은 인프라 지원이 ‘시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점이다. 

정치는 본래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자유시장경제의 본질이다. 정부가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국가 경제를 견인하도록 돕는 본연의 책무이지, 이를 지렛대 삼아 기업 경영의 결과물에 지분을 요구하거나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의미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국민기업’ 프레임이 시장경제의 핵심인 ‘위험 부담’의 원리를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진권 전 한국재정학회 회장은 “통상적으로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선행투자가 필수적이며, 사업 실패 시 발생하는 막대한 손실은 오로지 자본과 주주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 전 회장은 “정부가 인프라 지원 등을 빌미로 기업 성과에 생색을 내려 하지만, 막상 기업이 경영 위기에 처해 수조 원의 적자를 낼 때 손실을 분담하겠다고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위험은 분담하지 않은 채 이익이 날 때만 공적 기여를 명분으로 배분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결국 기업의 이익은 미래 연구개발(R&D)과 시설 확충을 위해 유보돼야 할 자본이지, 국가가 ‘국민 기여’나 ‘인프라 지원’을 명분으로 배분을 요구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논리다. 정부가 공적 지원을 빌미로 기업 성과에 무임승차하려는 행위는, 정작 기업이 적자를 낼 때 국가가 그 위험을 전혀 분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편의주의적인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