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와 ‘구류면류관’…‘21세기 대군부인’, 역사 왜곡 사과
수정 2026-05-16 20:08:59
입력 2026-05-16 19:27:59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글로벌 흥행 무색케 한 안일한 고증…제후국 예법 묘사로 자주성 훼손 비판
제작진 “대체 역사물 한계 인정, VOD 등 오디오·자막 수정할 것” 뒷수습
제작진 “대체 역사물 한계 인정, VOD 등 오디오·자막 수정할 것” 뒷수습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잘 나가던 드라마에 '마'가 끼었다. 발 빠르게 수습에 나섰지만, 흠이 크다.
서구권 시장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K-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자평하던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종영을 앞두고 치명적인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가상의 입헌군주제라는 방패 뒤에 숨어 대한민국 왕실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설정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결과다.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21세기 대군부인' 제작진은 1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관 설정과 역사적 고증 이슈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역사 왜곡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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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대군부인'이 막판 역사 왜곡, 사대주의 논란에 휩싸이며 제작진이 공식 사과했다. /사진=디즈니+ 제공 | ||
논란의 발단은 전날 방송된 11회였다. 극 중 왕실의 차남 이안대군(변우석 분)이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조선 시대에조차 탈피하고자 했던 사대주의적 예법이 버젓이 등장했다.
즉위식에 참석한 신하들은 새로운 왕을 향해 자주국의 상징인 ‘만세’ 대신, 중국의 제후국들이나 쓰던 ‘천세(千歲)’를 연호했다. 이에 더해 왕의 머리에는 자주적인 대한제국의 황제가 착용하던 ‘십이면류관’이 아닌, 중국의 신하국 왕이 쓰던 ‘구류면류관’이 얹어졌다. 현대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가상의 판타지 설정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근간과 주권을 스스로 격하시킨 꼴이 됐다.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과 SNS 등지에서는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는 드라마에서 대한민국을 스스로 중국의 속국처럼 묘사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기본적인 역사 교육조차 받지 않은 연출”이라며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왕이 구류면류관을 착용하고 신하들이 천세라고 산호(山呼)하는 장면이 우리나라의 자주적 지위를 훼손한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조선의 예법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 발생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역사적 맥락이 교차하는 부분에 대해 신중하고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했으나, 정교하게 세계관을 다듬고 면밀하게 살피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과오를 시인했다. 제작진은 시청자의 질책을 수용해 향후 재방송, VOD, OTT 영상 등에서 해당 장면의 오디오와 자막을 최대한 빠르게 수정하겠다고 수습책을 내놓았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최근 글로벌 누적 시청 시간 4,300만 시간을 돌파하며 비아시아권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됐다.
문화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대체 역사물이나 판타지 장르라는 명목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와 왜곡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꼬집으며, “글로벌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제작진의 역사적 책임감과 고증 시스템의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시청률과 글로벌 기록 이면에 가려진 안일한 역사 인식이 결국 안방극장에 카타르시스 대신 씁쓸한 분노를 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