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미륵봉 일대 불법 기도터 가설물 등 폐기물 40톤 대집행
석조 불두·공작물 등 여전…흔적 지우기는 향후 숙제
올해 연말 '금정산 전체 보전관리계획' 최종 수립 예정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살면서 수많은 길을 걸었지만 과연 이걸 '길'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얄궂은 산길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흙바닥에 미끄러지는 온갖 고초 끝에 해발 700m 고지대에 도착하자, 탁 트인 풍경 옆 바위 표면에 깊게 새겨진 불상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이다.

   
▲ 철거 후 마애여래입상 기도터./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지난주 찾은 이곳은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한 달여 만에 첫 대규모 정비 작업이 이뤄진 현장이다. 수십 년간 방치됐던 불법 기도터와 가설 건축물 등 국립공원 헬기로 실어 나른 폐기물만 약 40톤(t)에 달한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밟아보니 현실감 없는 수치의 폐기물들을 덜어냈음에도, 오래된 세월의 흔적은 여전히 완강하고 짙었다.

부산 6개 자치구(부산진·동래·북구·금정·연제·사상)와 경남 양산시를 포함해 총 8개 지자체에 걸쳐 있는 금정산은 지난 3월 3일 우리나라의 2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총면적 6만6859㎢ 규모로, 백악기 말 지하에서 마그마가 굳어 형성된 화강암이 융기해 만들어진 덕에 토르, 나마, 암괴류 등 다양하고 독특한 화강암 지형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 아궁이, 주걱, 태양광 패널…누군가 여기서 지냈다

   
▲ 마애불 정비 전 모습./사진=국립공원공단

철거 작업의 시작은 국립공원 지정보다 앞섰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금정산국립공원사무소가 공식 출범했지만 법적 집행 권한은 여전히 지자체에 묶여 있다. 지정 이전에 설치된 불법 시설은 관할 지자체가 처리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사무소는 양산시와 긴밀히 협의해 대형 헬기와 인력을 전폭 지원하는 방식으로 합동 작업을 이끌었다. 정비 대상지는 마애여래입상(마애불) 일원과 미륵봉 일대 등 고질적인 불법 기도터 두 곳이었다.

첫 번째 정비 구역인 마애불 기도터에서는 가설 건축물 2동과 촛불함 2개소, 철케이블, 용수 파이프 등 총 140㎡ 규모의 공작물과 생활 폐기물이 수거됐다. 마애불로 향하며 금정산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가 보여준 철거 전 사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애불 바로 앞에는 사찰에서나 볼 법한 번듯한 촛불함과 불전함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기도터 인근은 나뭇가지와 타프로 엮은 거적 아래 포대와 바가지, 항아리, 세제통이 어지럽게 가득했다. 판자에는 '아니온 듯 다녀 가소서 미륵불'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사진 속 형광 조끼를 입은 작업자들이 손으로 일일이 뜯어낸 폐기물 마대자루의 엄청난 양은 이 작업이 얼마나 이례적인 규모였는지를 대변했다.

   
▲ 마애불 집터와 아궁이 자국./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험한 길을 뚫고 도착한 마애불 기도터는 몇몇 잔해를 제외하고는 깔끔히 치워진 상태였다. 기도터에서 능선을 따라 50미터(m)가량 걸어가자 깎아지른 바위 앞 집터가 나타났다. 가운데에는 아궁이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재와 그을음이 검게 눌어붙은 아궁이 옆에는 분홍색 주걱 하나가 뒹굴었다. 사무소 관계자는 "이곳에 대문과 태양광 패널까지 설치돼 있었다"고 했다. 단순한 무속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 해발 700미터 낭떠러지를 코앞에 두고 실제로 살림을 차려 생활했다는 것이다.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을 독점해 공짜로 지냈다니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무거운 짐들을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이고 날랐을까 경이롭기도 했다.

이 마애불 기도터는 과거 산불이 한 차례 난 뒤 양산시가 철거를 명령했지만, 규모가 원체 크고 헬기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한 험준한 고지대라 지금껏 손을 쓰지 못하고 방치돼 왔다. 그러다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공단 소속 헬기를 활용한 행정대집행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가설 건축물이 있던 자리는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마애불로 내려가는 계단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며, 이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바닥의 시멘트를 깨고 최종 철거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 "파묘 같다"…바위에 새겨진 조각들과 동굴 속 제단

   
▲ 미륵봉 기도터 불상들과 바위에 새겨진 조각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이튿날 찾은 미륵봉 기도터는 초입에 들어서면서부터 묘한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무더운 날씨에 험한 산세를 오르내리느라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아니면 수풀 사이 좌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머리 네 개 달린 기괴한 석조 불두와 눈이 마주쳐서인지 알 수 없었다. 

긴 풀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용 조각이 새겨진 석조 기단 위에 관음보살상과 입불상 두 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두 불상 사이에는 '국립공원 내 무속행위 등 금지'라고 적힌 현수막이 묶여 있었다. 이 불상들 또한 신원미상의 누군가가 사적으로 가져다 놓은 기물들이라고 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바위 두 면이 마주본 채로 통째로 조각돼 있었다. 갑옷을 두른 무장 형상이 바위 아래까지 정교하게 조각돼 있었고, 그 위로는 음양을 상징하는 원형 문양과 한자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별도의 바위 벽면에는 조각된 '정법'이라는 글자 위로 파란 페인트가 채색돼 있었다. 사무소 관계자는 "전해 듣기로는 20~30여 년 전 한 도사가 여기 머물며 직접 새긴 흔적들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높고 가파른 바위 면에 어떻게 올라가 새겼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미스터리죠"였다.

   
▲ 무속인들이 기도를 드리던 동굴 입구와 내부. 바깥에는 미처 수거되지 못한 자잘한 기물들이 뒹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조각된 바위들을 지나치자 무속인들이 기도를 드리던 자연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음에도 음지 특유의 스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영화 <파묘>의 한 장면 같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사진으로 확인한 철거 전 동굴 안은 주전자와 촛불 흔적, 각종 무속 기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정리된 상태였다. 다만 안쪽 깊숙한 곳에 석재 제단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동굴 바깥으로는 미처 수거되지 못한 자잘한 기물들이 뒹굴었다. 

관계자는 "철거 전 이 공간에서 기도하던 분을 직접 만났다"며 "필요한 건 다 가져가시라고 했는데 본인은 필요한 게 없다고 하셨다. 챙겨갈 수 있는 건 챙겨가셨고, 나머지는 폐기물 처리했다"고 말했다.

미륵봉의 기물들과 목재 평상 등은 이번 대집행으로 대부분 철거됐지만, 불상 등 공작물은 이번 철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향후 양산시가 행정절차를 거쳐 처리할 예정이다. 바위에 새겨진 조각들은 석공을 동원해 직접 깎아내야 하는 작업이라 완전히 지워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인력 160명, 헬기 1대, 7일간의 정비

   
▲ (위)미륵암 상부 철거 전, (아래)미륵암 상부 철거 중./사진=국립공원공단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된 이번 정비 작업에는 연인원 160명이 투입됐다. 금정산국립공원사무소 67명과 지리산경남사무소 지원 인력 9명, 용역업체 56명, 양산시 공무원 28명이 힘을 모았다.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국립공원 대형 헬기(KA-32T) 1대가 동원돼 65마대 분량, 약 40톤의 폐기물을 산 아래 집하지로 날랐다.

헬기 운항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 나무들도 벌목됐다. 잘려 나간 나무들은 산 아래로 반출하지 않고 현장에 그대로 뉘어졌다. 벌채목을 밖으로 빼내지 않고 자연 분해되도록 그 자리에 두는 것이 국립공원의 원칙이다. 쓰러진 나무들은 썩어가며 곤충과 균류의 서식지가 되고 결국 토양으로 돌아간다. 수십 년 묵은 흉물들이 사라진 철거지 위로는 넓고 파란 하늘이 뚫려 있었다.

   
▲ 헬기 운항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벌목된 나무들이 뉘어져 있다. 이 나무들은 반출되지 않고 자연 분해돼 토양으로 되돌아간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사실 미륵봉 일대는 이번이 두 번째 정비다. 약 15년 전에도 양산시가 한 차례 행정대집행을 단행했으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불법 시설은 어느새 다시 들어섰다. 끈질긴 무단 점유 역사를 끊기 위해 사무소는 이번에 정비한 두 곳에 출입 통제 시설과 현수막을 걸고, 주 1회 도보 순찰과 드론 감시를 병행하며 철저한 사후 관리에 돌입할 예정이다.

◆ 불법 시설 60건…이제 시작이다

이번 철거는 금정산 전체 관점에서 보면 첫 단추에 불과하다. 공단과 지자체가 진행 중인 불법 시설물 전수조사에서 현재까지 파악된 건수만 총 60여 건에 달한다. 이행강제금 부과 건수가 아니라 실제 적발된 시설물의 개수다. 연내 완료를 목표로 8개 지자체와 전수조사를 계속하고 있어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소유자가 분명한 시설은 자진 철거를 유도하되, 불응할 경우 예외 없이 행정대집행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 이런 비법정 탐방로가 금정산에만 800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왼쪽 하단과 같은 오소리 굴도 만날 수 있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물리적 시설뿐만 아니라 그물망처럼 얽힌 800여 개의 탐방로를 법정과 비법정으로 구분해 정비하는 거대한 숙제도 남아 있다. 현재 공식 집계된 탐방로가 300개, 등산객들의 발길에 다져져 생겨난 비공식 샛길이 500개나 더 존재한다. 다른 산에 비해 금정산이 많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탐방로가 무분별하게 확장될수록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맨흙이 드러나 산림 황폐화가 극심해진다. 하지만 무턱대고 길을 막기에는 자신만의 단골 루트가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등산객들의 반발과 민원도 만만치 않다. 직접 다녀보니 자연도 자연이지만, 무엇보다 실족사고 등 안전이 우려됐다.

이를 조율할 금정산 전체 보전관리계획은 올해 연말쯤 최종 수립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은 단순히 산을 관리하는 주체가 지방정부에서 국가로 이관된 수준을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산행 문화와 행정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그동안 금정산은 복잡한 행정 구역에 걸쳐 있어 고질적인 불법 시설물이 발견돼도 관할을 미루거나 단속 기준이 제각각인 '행정 사각지대'였다. 예산과 장비 부족에 시달리던 지자체의 한계를 깨고 헬기 대집행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쪼개진 지방 행정력을 하나로 묶어낸 국가 기관의 추진력과 자원이 있었다. 

   
▲ 금정산국립공원 지도./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변화는 행정 시스템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립공원 지정 구역에서 금정산성 일대의 기존 음식점 지구는 제외됐지만, 공원 구역 안의 법적 테두리는 한층 촘촘해졌다.

우선 비법정 샛길 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취사와 야영도 불가능하다.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장이나 흡연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등산객들 사이에서 백패킹 성지로 통했던 파리봉의 텐트 군락도 이제는 불법 야영 단속 구역이다. 도심과 가깝다는 이유로 누구나 쉽게 접근해 라면을 끓여 먹고 텐트를 치던 친숙한 야산이, 이제는 개인이 마음대로 소비하는 사적 휴양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공공의 자연 자산이라는 사회적 합의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오르내리는 길 곳곳에서 사무소 직원들이 탐방로 시설물을 점검하고 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단은 국립공원 지정 첫해인 올해는 무조건적인 단속보다 캠페인 위주의 인식 개선과 계도 기간 운영에 집중하며 시민들이 느낄 혼란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 금정산 하산길에 만난 고양이.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 내 들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하산길, 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 유기한 것인지 원래 산에 살던 녀석인지 알 길은 없었다.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 내 살고 있는 들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산은 깊고 조용했다.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두 달째, 금정산은 이제 막 수십 년 묵은 무질서의 숙제들을 하나씩 꺼내 들며 거대한 보존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