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 AI·전력망 중심 고부가 구조로 재편
[미디어펜=이용현 기자]AI 데이터센터 확산과 글로벌 전력망 투자 확대가 맞물리며 국내 전선업이 구조적 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과거 건설 경기와 산업 설비 투자에 연동되던 전선 시장이 이제는 AI 인프라와 초고압 전력망 중심의 고부가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 대한전선이 미국에서 케이블 포설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대한전선 제공

19일 업계에 따르면 LS전선과 대한전선의 합산 수주잔고는 최근 10조 원을 넘어섰다. LS전선은 지난해 기준 매출 7조5000억 원대와 영업이익 2800억 원 수준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수주잔고도 7조 원대 중반까지 늘어났으며, 대한전선 역시 수주잔고가 3조 원대 중반 수준으로 확대되며 2020년과 비교해 약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초고압 전력망 수요 증가가 이러한 실적 개선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국제데이터센터기구(IDC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대형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약 67GW 수준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며,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역시 오는 2028년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최대 132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오는 204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8000만 ㎞ 이상의 전력망 신규 구축 및 교체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HVDC·초고압 케이블, 공급 부족 현상 더해져

특히 업계에서는 HVDC(초고압직류송전)와 초고압 케이블 중심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단순 물량 경쟁이 아닌 ‘선별 수주’ 시장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산업 시설 대비 전력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높아 초고압 송전망과 변전 인프라 확대가 필수적인데,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설비뿐 아니라 외부 전력망 연결을 위한 초고압 케이블 수요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등 각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전선 시장은 구조적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특히 해상풍력 확대와 국가 간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가 증가하면서 해저케이블과 HVDC 시장의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또한 업계에서는 현재 초고압 및 HVDC 케이블 시장이 사실상 공급 부족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도의 기술력과 대규모 생산설비, 시공 경험 등이 요구되는 만큼 글로벌 공급업체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에너지 전문 매체 energy central은 해저·초고압 케이블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장기간 기술 축적, 시공 경험이 동시에 요구되는 데다 구리 수급 부담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공급업체 수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도 고부가 중심으로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대한전선의 경우 전력 및 절연선 비중이 2025년 2분기 17.1%, 3분기 18.4%, 2026년 1분기 20.3%까지 꾸준히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및 절연선은 송·배전망과 초고압 전력 인프라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고부가 제품군으로 평가된다.

LS전선 역시 고부가 중심 구조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LS전선의 나동선 매출 비중은 2024년 55%, 2025년 55%, 2026년 1분기 57%까지 확대됐다.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에 따라 중간재와 초고압 케이블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는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LS전선은 유럽 해상풍력 프로젝트 및 글로벌 장기 수주를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해저케이블 프로젝트 수주 등 해외 매출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대한전선 역시 최근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을 추가 확보하며 해상풍력과 해저케이블 시공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단순 제조를 넘어 설계·생산·운송·시공까지 수행하는 프로젝트형 전력 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원재료 '전기동' 가격 올라도"공급 부담 없어"
 
아울러 국내 전선업계의 경우 원재료 가격 상승 부담 역시 과거 대비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전기동(구리) 가격은 최근 약 35%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선업 특성상 구리 가격 상승은 원가 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에스컬레이션(원재료 연동) 구조를 기반으로 계약되는 만큼 수익성 훼손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에스컬레이션 구조는 원재료 가격 변동분을 제품 판매가격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구리 가격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할 수 있는 계약 구조다. 이에 따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오히려 매출 단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도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구리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원재료를 선매입하거나 재고 전략을 병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업계에서는 이번 전선업 호황이 단순 경기 반등이 아닌 산업 구조 변화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국가 간 전력망 구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선업이 기존 건설·경기 민감 제조업에서 벗어나 장기 프로젝트 중심의 인프라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고압 케이블 등 고부가제품의 경우 구리 함량이 통상 60% 이상에 달하는 등 원자재 변동성이 크지만, 앞으로도 핵심 원재료인 전기동의 안정적인 수급과 리스크 관리를 위해 공급망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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