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구본무 회장 8주기, 미래 혜안이 심은 ‘기술 구국’ 씨앗 결실
20년 적자 견딘 배터리·대형 OLED·‘전장’…그룹 핵심으로 성장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고 구본무 LG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8주기를 맞았다. 재계에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선제적으로 미래 산업을 발굴했던 그의 ‘뚝심 경영’과 리스크를 감내한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목소리가 높다. 

그가 생전 주위의 우려 속에서도 밀어붙였던 배터리·대형 디스플레이·전장(자동차 부품)은 이제 LG그룹을 글로벌 첨단 산업의 주역으로 이끄는 핵심 축이 됐다.

   
▲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자경 회장(왼쪽)이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LG 제공


◆ 20년 적자 버텨낸 뚝심…배터리와 대형 OLED로 미래를 보다

구본무 회장의 경영 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장기적 안목'과 '기술 집념'이다. 오늘날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이차전지와 대형 OLED 사업은 그의 전폭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유산이다.

1992년 그룹 부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배터리 사업은 2000년대 중반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며 내부에서조차 무용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구 회장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며 투자를 강행했고, 이는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을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업으로 키워낸 원동력이 됐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그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중소형 OLED 시장을 삼성이 선점한 상황에서, LG는 기술적 난제가 많아 리스크가 컸던 TV용 '대형 OLED' 양산 노선을 고집했다.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조 원의 투자를 밀어붙인 결과,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대형 OLED 패널 시장을 개척하며 프리미엄 TV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 ‘전장 사업’ 신설과 대형 M&A…모빌리티 삼각편대 완성

구 회장의 혜안은 전자·화학을 넘어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다시 한번 증명됐다. 구 회장은 스마트폰 이후의 성장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자동차 전장 부품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지난 2013년 LG전자 내에 VS(차량부품) 사업본부를 신설하며 전장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제조 중심의 LG에 전장 사업은 생소한 도전이었고, 이후 10년 가까이 적자의 늪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구 회장은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투병 중이던 2018년 초에는 오스트리아의 프리미엄 헤드램프 기업 'ZKW'의 인수를 최종 승인하며 전장 사업의 구조적 기틀을 완성했다.

그가 구축한 '배터리(화학)-대형OLED(디스플레이)-전장부품(전자)'의 모빌리티 삼각편대는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시너지를 폭발시키며, 현재 LG그룹의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


◆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던 소신… ‘정도경영’의 이정표

구 회장은 단기 성과나 외부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정도경영'을 기업의 뿌리로 내린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지난 2016년 12월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장에서 전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출석해 위축돼 있던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내라고 하면 또 낼 것이냐는 압박성 질문이 쏟아졌다. 이때 구 회장은 "국회에서 입법화해서 (강제 기부 등을) 막아달라"며, 기업이 정권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을 지적하고 법치주의적 해결을 역으로 제안하는 소신 발언을 던졌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얼버무리는 대신,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이 걸어가야 할 당당한 길을 명확히 밝힌 이 일화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자 했던 그의 평소 신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15년 제정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모델이 된 ‘LG 의인상’과 그가 가꾼 곤지암 ‘화담숲’ 역시 사람과 사회를 대하던 그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유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구광모 체제의 LG…부친의 하드웨어 위에 '혁신'을 입히다

구본무 회장의 유산은 4세 경영인 구광모 회장에 의해 디지털 전환(DX)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스마트폰 등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는 한편, 부친이 닦아놓은 전장과 배터리 기반 위에 AI(인공지능), 바이오, 클린테크 등 이른바 ‘ABC’ 분야를 덧입히고 있다.

특히 구본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문을 열었던 마곡 사이언스파크는 이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등 그룹의 차세대 소프트웨어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 R&D 허브로 거듭났다.

재계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은 우리 산업사에 끈기와 집념이 어떻게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지 증명한 인물”이라며 “단기 성과와 외부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던 그의 '기술 구국' 정신은 대내외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LG가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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