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 '약탈적 성과급'이 소환한 '新노동계급화사회'
수정 2026-05-22 17:40:37
입력 2026-05-22 17:40:48
문상진 기자 | mediapen@mediapen.com
삼성의 선택은 대한민국 노동자의 기준이 된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주어진다는 시장주의에 철저한 삼성이었기에 공감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원칙이 파기됐다. 이제 우려는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약탈적 성과급'이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위험인자로 작용하고 있다.
"성과급은 의무가 아니다". 노조법에 근거한 대법원 판례도 성과급은 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번 삼성전자의 노조 파업과 관련한 성과급이 산업계의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는 데 있다.
AI시대 전례없는 반도체의 호황으로 예상을 웃도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발생하자 노조가 분배에 뛰어 들었다. 적자일 때는 말 없던 노조가 어닝 서프라이즈라는 쇼트 서클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과는 노조의 승리였다.
반도체라는 특수 산업의 경우 작업 라인이 중단됐을 경우 타격은 너무나 크다. 이게 결국은 노조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역설적 결과를 불렀다. 첨단일수록 미세공정의 리스크는 크다. 삼성전자 노조의 이번 파업 협박은 결국 부문 산업의 특별성을 약점으로 잡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방위산업의 중요성과 비추어 보더라도 지금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은 후순위에 둘 수 없다. 이를 악용하는 노조의 이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행태가 국민적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결국 노조의 승리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가 가져올 후퐁풍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은 숙제를 던져 주고 있다.
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성과급을 노조가 파업 명분으로 삼았다는 자체도 시장경제의 질서에 위배된다. 기업의 안전장치가 무장해제 당한 상태에서 노조는 무소불위의 협박으로 기업의 경영과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박탈감과 공정성 훼손을 불러 정의의 질서와 시장경제를 해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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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가 노조의 과도한 보상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경영 기본 원칙을 사수했지만 결국 노조의 총파업이라는 벼랑 끝 전술에 손을 들었다. 신노동계급사회의 출발이 우려된다. /사진=연합뉴스 | ||
기업의 탓도 있다. 오랜 관행적 보상이 삼전 사태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은 비현실적일 만큼 수익구조에서 노조의 입장을 들어 줘 왔다. 그것이 관습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매년 지급하는 성과급에 대한 노동자의 당연감, 그것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통하는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 친노동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노동탄압이라는 주홍글씨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가 더 컸다. 대기업 강성노조의 특권적 대우가 수면 위로 부상한 지 오래다. 사회적 갈등으로 작용하고 문제가 될 것임을 몰랐던 정치권이 아니다. 권력 유지를 위해 굳건히 보호 내지 눈 감아 온 것이 오늘의 갈등과 분노를 유발케 했다.
삼성전자의 이번 협의를 바라보는 산업계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영업이익의 일정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선례는 결국 모든 산업체가 미래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불확실성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생존은 이익을 나눔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도 중요하다. 지속성장을 위한 투자를 보장할 수 없다면 생존마저 담보할 수 없다.
이번 삼성전자의 사태는 미래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였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첨단산업일수록 천문학적 시간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 결실은 수년 또는 십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당장 이런 미래에 대한 투자가 위축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삼성전자 노조의 '탐욕'은 오늘의 열매에 취해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만드는 '씨앗 말리기'다.
수십 년에 걸쳐 수백 조원의 투자가 결실을 맺는 시점에 밥 그릇부터 챙기자는 건 염치 없는 행태다. 그 이전, 더 힘든 시간을 감내하고 인내하며 미래에 빛을 밝혀 주기 위해 애써 온 모든 노력에 대한 배신이다. 지금 열리는 과실은 오늘 있는 그들이 이룬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안다. 노동계가 외쳐 온 '동일 임금, 동일 노동'도 돈 앞에 무너졌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가 얻은 것은 그들이 키우고 만들어 온 열매가 아니다. 그 열매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더 나은 세상과 미래에 전해야 할 씨앗이다. 열매에 취해 씨앗마저 빼앗겠다는 이들의 행태는 노동의 쿠테타다. 열매의 달콤함에 취해 씨앗마저 말리겠다는 이기주의다. 비단 삼성전자 노조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탐욕과 이기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 주는 과제다.
AI시대가 급격히 다가오고 있다. 일자리가 위협 받는다.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럼에도 철 지난 노동 지상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유독 노동시장 유연성이 경직된 우리의 현실이 강성 노조의 외침에 굴복하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 시장 체급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 채 언제까지 '귀족 노조'라는 어둠의 시대에서 '영웅적 서사'를 만들어 갈 것인가?
정치의 잘못으로 불 지른 부동산의 박탈감이 사회전반으로 번져 가고 있다. 실패한 정치가 반성은커녕 잘못된 정책의 탓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 부동산발 사회적 갈등을 산업계로 옮기고 주식시장의 열풍으로 유인한다. 자유와 경쟁과 시장이 없는 상생은 결국 부작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부동산은 투기이고 주식은 투자일까?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주식 권하는 사회'로 급선회 했다.
정부의 양극적인 정책으로 주식 시장으로 몰려드는 '포모'(FOMO·소외 공포)의 후유증은 과연 누구의 몫이 될까? 집 있는 빈털털이의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님 집도 없는 빈털털이의 세상을 만들 것인가. 영끌과 빚투를 부추기는 이상한 나라의 선택적 오류를 범하게 하는 이는 누구인가. 선택에 따른 결과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거늘.
노동 시장의 계급화를 부추긴 건 또 누구인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부르짖으며 정규직화를 강제했던 정책의 결실은 어디로 갔나. 성과를 올린 기업들의 노조원 모두가 성과급을 요구하며 머리띠를 매고 있다. 평생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을 성과급이라는 포장으로 한 방에 버는 이런 로또가 있을까.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의 끝은 어디일까.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영업이익 배분의 요구는 협력사로 확산될 것이다. 이익이 있어야 보상한다는 성과 보상원칙마저 무너졌다. 삼성전자의 선례는 성과급마저 나눠먹기식이 됐다. 돈 안되는 부서는 기피 대상이 됨으로써 미래 사업은 덫에 걸렸다. 6억 성과급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계급화되고 있다. 신노동계급화 사회가 열리고 있다. 이게 친노동 정책의 민낯일까 두렵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