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서아프리카 발(發) 장거리 노선 증가 '톤마일' 팽창…VLCC 척수 부족 현상 가중
단기 패닉바잉 걷히고 '친환경 교체' 본게임 진입…K-조선, 공급자 우위 선가 방어전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과 이란의 외교 협상이 최종 단계에 진입하며 호르무즈 해협 물류 마비 공포가 완화되고 있지만 글로벌 원유 공급망이 미주와 아프리카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아시아 수입국들이 중동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장거리 원유 도입을 늘리면서 해상 물류의 핵심 지표인 '톤마일(운항 거리)'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조선업계가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시장에서 구조적 호황의 닻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VLCC/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2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 간의 대치 상황이 외교적 타협을 향한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 이란이 일부 선박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을 짓누르던 전면적인 물류 셧다운 우려는 한풀 꺾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중동 공급망의 취약성을 확인한 아시아 수입국들의 셈법은 달라졌다.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일시적인 휴전과 무관하게 남미 가이아나나 브라질, 서아프리카 등으로 원유 도입선을 전면 다변화하려는 거시적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비(非)중동 지역의 장기 조달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방향으로 수급 전략이 수정된 것이다.

◆ 톤마일 팽창이 띄운 VLCC 구조적 수요

원유 조달처의 변화는 글로벌 해운 시장의 톤마일 급증으로 직결된다. 중동에서 아시아로 향하던 기존 노선과 비교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해야 하는 미주 및 아프리카 노선은 운항 거리가 두 배 가까이 길다. 동일한 양의 원유를 실어 나르더라도 항해 일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물리적을 더 많은 수의 VLCC가 투입돼야 하는 구조다.

이는 지정학적 긴장 완화에 따른 단기 수요 감소 우려를 장거리 물동량 증가가 완전히 상쇄함을 의미한다. 톤마일 팽창은 해운사들의 선복량(적재 능력) 부족을 유발하고 결국 선박 발주를 자극하는 강력한 펀더먼털로 작용한다. 호르무즈 사태가 촉발한 공급망 재편이 VLCC 시장의 기초 체력을 구조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여기에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이 톤마일 증가에 대비해 선대를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용선료도 상승하고 있다. 화주들의 장기 운송 수요는 많지만 이를 소화할 대형 선박은 부족한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면서 결과적으로 해운사들은 VLCC 발주를 통해 물류망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 친환경 본게임…K-조선, 공급자 우위 다진다

노후 선대 교체 주기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맞물리면서 VLCC 발주 시장은 친환경 중심 본게임에 돌입했다. 현재 운항 중인 선박 상당수가 15년 이상 된 구형 선박인 상황에서 화주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이중연료 엔진을 탑재한 친호나경 신형 VLCC로의 교체가 필요하다.

이런 수급 불균형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강점을 지닌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K-조선 기업들에게 공급자 우위 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미 3~4년 치 도크를 확보한 국내 조선사들은 무리한 저가 수주를 지양하고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를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기술이 요구되는 대형 VLCC 분야인 만큼 한국 조선사들의 고선가 방어력은 하반기에도 견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국내 조선업계는 친환경 이중연료 엔진 등 독보적인 기술 장벽을 세우고 중국 저가 공세를 무력화하고 있다. 선주사들 역시 장거리 운항에 따른 막대한 연료비 부담을 줄이고 환경 규제 페널티를 피하기 위해 연비가 검증된 한국산 프리미엄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양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긴장 완화로 시장의 비이성적인 과열은 진정됐지만 톤마일 팽창과 친환경 선박 교체 주기가 겹치며 발생하는 구조적인 선박 부족 현상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충분한 일감을 확보한 국내 조선업계는 고부가가치 친환경 VLCC 수주를 통해 하반기에도 실적 랠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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